매일신문

[조두진의 책속 인물 읽기] 인생의 베일/키티와 월터

키티는 자신의 집에서 유부남 찰스와 밀애 중이다. 그러나 누군가 엿보고 있다. 누구였을까? 남편 월터였을까?

1920년대 영국 식민 통치하의 홍콩. 영국인 세균학자 월터의 아내 키티는 홍콩 총독부 차관보 찰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진실하지만 사랑에 서툰 남편 월터를 두고, 바람둥이 매력남 찰스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남편이 출근한 사이 자신의 집에서 찰스와 정사를 나누다가 누군가에게 들켰다.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문밖에서 안을 들여다본 사람은 남편이 틀림없다.

키티는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남편 월터는 말이 없다. 불안하고 어정쩡한 날들이 지나간다. 며칠 후 남편 월터는 자신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의 오지 마을로 함께 갈 것을 요구한다. 만약 함께 가지 않는다면 간통죄로 고소하겠다고 말한다.

'콜레라가 창궐하는 오지라고?'

키티는 남편을 버리기로 작정하고 사랑하는 찰스에게 달려간다. 그러나 찰스는 냉랭하다. 찰스에게 키티는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키티는 사랑을 나눈 게 아니라 남편에게 '범죄'를 저질렀을 뿐이다.

키티는 어쩔 수 없이 남편을 따라 전염병이 도는 땅으로 간다. 낯선 땅, 코앞에 도사린 죽음과 광활한 자연을 마주하면서 키티는 상처에서 벗어난다. 아름다운 자연과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들, 인내와 용기로 그녀는 과거의 잘못을 스스로 용서하고 벗어난다. 더 이상 찰스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았다.

남편 월터는 키티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는 전염병 퇴치를 위해 목숨까지 걸지만 부정한 아내는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어느 날 키티는 월터가 콜레라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간다. 사람들은 월터가 환자를 치료하다가 병을 얻은 게 아니라 자기 신체에 세균실험을 하다가 감염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키티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월터는 '죽은 건 개였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죽는다.

월터는 끝내 아내를 용서하지 못했고,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 반면 키티는 오지에서 만난 자연의 풍경에 종교적 위안과 같은 느낌을 받고 상처 입은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 남편의 장례식을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온 키티는 다시 찰스를 만나 애증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만 빠져나온다.

'오레스테이아'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가 쓴 작품이다. 오레스테스는 아가멤논의 아들이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원정길에 나서면서 순풍을 얻기 위해 딸 이피게네를 제물로 바친다. 남편 때문에 딸을 잃은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증오와 복수심을 키운다. 그녀는 남편이 전장에 나가 있는 동안 남편의 사촌인 아이기스토스와 불륜 관계를 맺고, 남편이 돌아오자 그와 공모해 남편을 살해한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딸의 복수를 행했고, 아이기스토스는 자기 아버지의 원한을 갚았다.

아이기스토스의 아버지는 아가멤논의 아버지 아트레우스와 형제간이었다. 아트레우스는 왕권을 도전 받자 형제지간인 티에스테스(아이기스토스의 아버지)의 자식들을 죽여 그 고기를 먹게 했다. 당시 갓난아기였던 아이기스토스는 죽음을 모면했고, 성장한 후 아버지와 형제들의 복수를 단행한 셈이다.

아버지 아가멤논이 살해당하자 그녀의 딸 엘렉트라는 동생 오레스테스와 공모해 어머니와 어머니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살해한다.(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여기서 기인했다.) 3대를 이어 복수가 계속되는 것이다.

어머니를 살해한 오레스테스 역시 복수의 여신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쫓겨다닌다. 이때 아테네 여신은 법정을 열고 오레스테스를 재판했는데 결과는 가부동수였다. 재판 전에 아테네 여신은 '가부동수일 경우 무죄로 한다'고 규정해두었다. 이에 복수를 원했던 신들은 분노에 치를 떤다. 그러나 어쨌든 3대에 걸친 복수는 일단락된다.

이 이야기는 죄가 반드시 징벌로만 '탕감'되는 게 아니라, 합리적 개입(법)을 통해 '면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법의 본질은 '보복'이 아니라 '복수의 중단'에 있다고 말한다. 물론 법은 '복수'를 일단락 짓지만 범죄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오레스테스는 면죄 받는 대가로 앞으로 '어떤 죄도 저질러서는 안 되는 운명'을 짊어져야 한다. 면죄 받는 대신 '두 번 다시 죄를 저지를 수 없는' 가혹한 처벌을 받는 셈이다. (사람이 죄 안 짓고 살기는 무척 어렵다.)

월터는 아내의 간통(죄)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래서 끊임없이 벌을 가했다. 그러나 그 결과 파멸한 것은 자신이었다. 반대로 비록 죄를 저질렀지만 키티는 스스로 용서하고, 죄짓지 않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다.

사람은 잘못(죄)을 저지를 수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어떤 복수(동태복수 혹은 법을 통한 징벌)도 '범죄'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어쨌든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어떤 용서와 어떤 징벌이 필요한지 월터와 키티, 오레스테스는 보여준다. 그럼에도 분풀이(동태복수)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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