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7월 1일, 의병장 이강년 선생이 경상북도 청풍군 까치성에서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체포됐다. 악조건 속에서도 많은 전투를 치르며 혁혁한 전과를 올렸던 선생은 이 습격으로 복숭아뼈에 총상을 입었지만 마지막까지 칼을 빼어들고 저항했다. 이후 서울로 압송되어 벌어진 재판에서 '도적국가의 착취를 당하는 농민으로 사느니 차라리 대한의 개나 돼지로 사는 것이 낫다'고 답변을 했다. 그 해 9월 23일 50세로 순국했다.
선생은 1858년 경상북도 문경시에서 태어난 한말의 의병장. 1880년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지내다가 낙향했다. 이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문경의 동학군을 지휘했다. 이어 제천으로 유인석(柳麟錫)을 찾아가 사제의 의를 맺고, 유인석 의병부대의 유격장으로서 문경 조령 등지에서 활약했다.
1907년 일본의 침략정책이 더욱 노골화되자 영춘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때마침 원주 진위대를 이끌고 봉기한 민긍호부대와 합세, 충주를 공격했다. 그후 가평·인제·강릉·양양 등지에서도 큰 전과를 올렸다. 그는 전투에서 승리를 가장 많이 한 의병장 중 한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다.
▶1964년 석굴암 복원공사 준공식 ▶1981년 대구직할시로 승격
정보관리부 이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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