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의 자료들을 집으로 가져간 일은 심각한 사건이다. 그는 무려 200만 건이 넘는 자료에다 청와대 업무처리체계의 메인 서버와 하드디스크까지 통째로 가져갔다. 그 일은 유령 회사(paper company)와의 계약을 통해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졌다. 청와대와 노 전 대통령 측의 얘기가 엇갈리지만,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걸맞지 않은 판단과 처신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런 자료들을 가져갈 권한이 없다. 그의 임기 안에 나온 자료들 가운데 그의 개인 재산으로 분류될 것들은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을 터이므로, 그가 가져간 자료들은 거의 다 국가 재산이다. 그 자료들이 원본이냐 복사본이냐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과는 관련이 없다. 원본을 가져갔다면, 잘못이 더욱 클 뿐이다. "자료를 보러 '국가기록원'까지 가란 말이냐?"라는 그의 비서관의 황당한 항변은 국가 재산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그릇된 인식을 보여준다.
다음엔, 가져간 자료의 양이 너무 많다. 일반적으로, 전직 국가 원수가 재임 중에 생긴 자료들을 가져가는 것은 회고록을 쓰는데 참고하고 자신의 기념관에 기증하려는 뜻에서다. 200만 건이 넘는 자료는 그런 목적들에 필요한 수준을 훨씬 넘는다. 청와대의 업무처리체계와 거기 들었던 자료를 그대로 사저에 이전한 일은 이명박 정권에 넘긴 자료들이 아주 적다는 사실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유령 회사를 통해 자료들이 이전되었고 그 비용을 댄 사람이 그의 측근이었다는 사실도 심각한 문제다. 그 자료들 가운데 국가 기밀들이 있을 가능성으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만일 국가 기밀이 실제로 밖으로 나갔다면, 이 일은 성격이 달라진다. 국가 기밀 정보들을 취급할 권한이 없는 사람들이 접근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봉하마을의 노 전 대통령 사저가 큰 돈을 들여서 잘 지은 저택이긴 하지만, 보안에서 청와대와 같을 수 없다는 점도 있다. 기밀로 분류된 자료들은 즉시 회수되어야 한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처지에 걸맞지 않은 처신을 했다. 그런 처신은 여러 가지 풍문들을 낳았다. '권력형 비리'들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해서 관련 자료들을 모두 '비공개'로 분류해 국가기록원에 넘겼다는 주장은 대표적이다. 노 전 대통령은 비서관들의 억지스러운 변명 뒤에 숨지 말고 자신의 처신과 항간의 풍문들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노 전 대통령의 처신도 문제적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판단은 더욱 문제적이다. 청와대는 "원래 노 대통령 측과 조용히 해결하려 했다"고 밝혔다. 기밀 자료들이 포함된 국가 재산을 개인이 사사로이 가져간 사건이 어떻게 청와대가 노 대통령 측과 '조용히 해결할' 일인가? 법에 어긋나는 일을 다스리는 것은 대통령의 본분이다. 사사로이 인심을 써서 눈감아 줄 일이 아니다.
만일 이런 일이 법이 제대로 지켜지는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그런 '선심'이 노 전 대통령의 잘못된 처신보다 훨씬 큰 추문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원래 법을 가볍게 어겨서 '위장 전입'위장 취업'이라는 비난에 시달렸으므로, 이 대통령으로선 더욱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이번 일을 '조용히 해결하려 한' 일에 관해서, 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하고 깊이 사과해야 옳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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