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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禁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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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의 시대였던 80년대 중반 김포공항에서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졌다. 외국 학술대회에 참석한 한 교수가 원서 몇 권을 들고 들어왔다. 거기에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쓴 막스 베버(Max Weber)의 저서도 있었다. 공항 세관원은 '막스'의 책은 禁書(금서)이므로 압수하겠다고 했다. 그 교수는 이것은 "그 막스(Karl Marx)가 아니라 다른 막스"라고 설명했으나 세관원은 요지부동이었다. "어쨌든 막스는 안 돼요."

1559년 교황 파울루스 4세는 금서목록을 펴냈다. 바티칸공의회 이후 1966년 폐지될 때까지 42번 개정'증보된 이 목록에 수록된 책은 모두 4천126권이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루소의 '사회계약설'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플로베르의 '보봐리부인'을 포함해 데카르트, 홉스, 흄, 로크, 밀, 몽테뉴, 몽테스키외 등 서양을 대표하는 지성의 저술이 들어있었다.

나치 치하였던 1935년 5월 베를린대학 광장에서 '퇴폐적 저술'의 焚書(분서) 의식이 거행됐다. 불탄 책은 만, 라마르크, 졸라,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마르크스, 카프카 등 131명의 작가, 철학자, 과학자의 저술이었다.

후일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어떤 시인이 분서 목록에서 자신의 책이 빠진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라고 집권자에게 호소하는 내용의 '焚書'라는 시를 썼다. 이날의 분서 소동을 조롱한 것이다. 국방부가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 등 23권을 '금서 조치'하자 브레히트류의 조롱이 줄을 잇고 있다. 어떤 저자는 "내 책이 왜 불온서적으로 지목되지 않았는지 따져야 겠다"고 했으며, 한 네티즌은 "좋은 책들을 소개해줘 고맙다"고 했다.

국방부는 아직도 '정훈교육'으로 병사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80년대 군부독재의 금서 조치에도 사회주의 서적은 대학가를 휩쓸었다. 이는 우리 사회과학이 우파 일변도의 외눈박이에서 벗어나게 한 자양분이 됐으며 나아가 사회주의의 달콤한 언설이 허구였음을 깨닫게 하는 밑거름이 됐다. "책은 살해될 수 없다. 제 스스로 살고 죽는다.(중략) 금서가 있는 곳에 항상 새로운 정신적 만남과 혁명의 향연이 있다." 모로코의 한 작가의 말이다.

정경훈 정치부장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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