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커피의 비밀]영국인과 커피

커피를 마시기 전까지 영국인들의 기호음료는 술이었다. 커피는 처음에 한 의사가 술을 끊을 수 있는 약으로 처방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1650년 야곱이라는 영국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2년 뒤에는 그리스인 파스칼 로제가 성미카엘성당 맞은편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다. 유대인 상인인 다니엘 에드워즈의 하인 파스칼 로제가 주인을 위해 아침마다 커피를 끓이면서 소문이 나자 에드워즈가 커피하우스를 열도록 한 것.

'윌의 커피하우스''바튼의 커피하우스'등 런던의 커피하우스들은 주로 주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당시의 커피하우스는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며 예술가'지식인'상인'은행원들의 회합 및 정치인들의 집회 장소였다. 신분과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1페니만 지불하면 커피하우스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며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페니 대학'으로 불렸다. 커피하우스의 풍경은 늘 사람들로 붐벼 시끄럽고 담배연기가 자욱하며, 종업원들은 너도밤나무가 타는 불길에 포트를 올려놓고 커피를 끓이는 등 마치 축제를 벌어는 듯한 분위기였다. 이렇게 활기차고 복잡한 커피하우스에서 사람들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더 좋은 서비스를 받으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종업원에게 팁을 주는 관습은 이런 영국의 커피하우스 분위기 속에서 생겨났다.

그러던 중 커피하우스에서 사교생활에 여념이 없던 런던의 남편들에 대한 부인들의 궐기가 1674년에 일어났다. 청원서에는 '남편들이 커피하우스에서 종일토록 지내느라 집안일을 등한시할 뿐만 아니라 건강을 해치는 커피로 인해 부부생활에 지장이 있으며 또 커피음용은 불임의 원인이 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러한 여성들의 권리가 있은 뒤부터 여성들도 커피하우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찰스2세는 커피하우스가 혁명의 온상이 될까 두려워 커피하우스의 폐쇄령을 내렸으나 반대에 부딪혀 11일만에 철회됐다.

18세기 무렵에 이르러서는 커피와 커피하우스가 영국문학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물 흐르듯 완만하고 느슨한 언어의 흐름으로 이뤄졌던 영국작가들의 문체가 논리적이면서도 신랄한 비평과 날카로운 논쟁의 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커피가 잠재해 있던 감수성에 자극을 주고 숨어있던 창의력을 이끌어낸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커피문화가 여성들을 위한 아름다운 커피하우스를 출현케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홍차문화의 기반이 됐다. 이렇듯 활기차고 창조적이었던 런던의 커피하우스가 영속성을 가지지 못하고 오늘날 그 전형이 전해지지 않는 이유는 18세기 당시 국제정세에 따른 영국의 위상이 커피무역을 주도하지 못한 때문이다. 영국은 거래를 할 수 있는 커피재배 식민지가 없어 차로 눈을 돌렸다. 커피의 관세를 올리며 커피를 배척하고 차를 마시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부 사회학자들은 차갑고 과묵한 영국인들의 기질상 평온함을 주는 차의 맛이 더 적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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