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벽 위의 그림 한 점

아무래도 전공이 그래서인지 어느 집에고 들어서면 먼저 벽에 걸린 그림이나 글씨에 시선이 간다. 역시 집주인의 취향과 지향하는 바는 소장하고 있는 몇 점 그림들의 안목으로 가늠되기도 한다.

요즘 다들 어렵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초가을 바람을 맞으며 전시회장을 좀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삶이 각박할수록 그래도 인생의 진부하고 상투적인 문장에 쉼표와 느낌표를 찍어주는 것은 자연과 예술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구에는 어느 도시보다도 많은 갤러리공간이 있고, 또 연일 수많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먹고 사는 일에도 바쁜 세상에 무슨 전시 관람이냐고, 그리고 화랑이란 전문가들의 공간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언제나 일반 대중을 위해 화랑이 열려 있듯이 작품의 세계도 불특정 다수를 향해 열려 있다. 그러나 보지 않은 전시는 닫혀 있듯이 만나지 못한 작품들은 닫혀 있기 마련이다. 일단은 보고 다녀야 좋은 작품도 만날 수 있고, 때론 여러 권의 책 두께보다 더 깊은 의미의 지층을 지닌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사정이 되어 그림도 구입할 수 있고, 또 벽 위의 그림 한 점이 진부한 삶의 출구가 되어 줄 수 있다면, 그 가치는 경제적인 것으로는 환산이 안 되는 지고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모을 수 있을 때 장미를 모으라"고 말하고 싶다. 고달픈 일들을 잠시 쉬면서 거리를 산책하는 일도 장미를 모으는 것이고, 가보지 못한 바다를 향해 기차를 타는 일도 장미를 모으는 일이지만, 누군가가 각혈처럼 쏟아놓은 예술작품 하나를 모을 수 있다면, 삶은 그만큼 연장되고 확장되며 풍요로워질 것이다. 장미는 어디에고 피어 있지만 그 속살을 보고 또 만나지 못하면 장미도 '닫혀진 장미'일 뿐이다.

10월, 11월은 앞으로 '대구의 미술시대'를 열어가는 데 큰 계기가 될 다양한 행사를 예정하고 있다. 한국과 세계의 다양한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비교 감상하고 소장할 수 있는 기회인 대구 아트 페어(10. 29~11. 2, 대구 엑스코)를 비롯하여 국제적인 사진 전문 비엔날레로서 국내에서 유일한 대구사진비엔날레(10. 30~11.16, 대구 엑스코 및 대구문화회관 등), 그리고 '이미지의 반란'이라는 제목 하에 시립미술관 프리 오프닝전 형식으로 개최되는 '아트 인 대구 2008'(10. 31~11.13, KT&G 연초제조창 별관) 등, 여러 행사가 마련된다.

특히 '이미지의 반란'전은 갤러리 공간이 아닌 넓은 공장 건물 공간을 이용해 이루어지는 전시로서, 전국의 지명도 높은 작가들과 대구의 대표성 있는 작가들의 새로운 공간 해석이 기대되는 전시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뉴욕이나 파리, 베이징 등 국제적인 도시에서는 전통적인 폐공간을 부수지 않고 새롭게 리모델링하여 훌륭한 현대적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구에서도 이제 역사적인 건물들의 활용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고, 도심의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시민들의 새로운 삶을 디자인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기류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참여와 관중의 진지한 관심이다. 이런 모든 행사와 준비가 몇몇 전문가들만의 잔치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시민들이 전시회도 관람하고 또 애정어린 비판도 해야 한다. 벽 위에 걸린 그림 한 점의 파급효과처럼, 문화행사에의 적극적인 참여는 문화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살려줄 뿐 아니라 개개인의 삶의 질을 고양시키게 될 것이다.

물론 모든 행사는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여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애정어린 비판은 무관심보다 훨씬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매사를 자기중심으로 해석하여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비판과 비난만을 일삼는다면 애써 일하는 사람들이 힘을 잃고 의욕을 상실한다. 그래서 '장미를 모으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장미진(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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