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상 시나리오로 구성한 독도 사람들의 '송구영신'

대한민국에서 해를 가장 먼저 맞는 곳, 독도. 한 해를 여는 붉은 태양이 바다에서 불끈 솟아오릅니다. 동해 바다 한중간 독도로부터 새해가 열렸습니다. 해 뜨는 하늘에는 서기(瑞氣)가 충만하여 희망이 열립니다. 어제까지의 해는 무자년(戊子年)의 해였고 오늘 아침 떠오른 태양은 기축년(己丑年)의 해입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간 가운데 한 해가 바뀌는 오늘만큼은 시간의 연속성보다는 더욱 뚜렷하게 느껴지는 격절감. 그 격절감으로 우리는 지난해를 되돌아보고 또 새해에는 좋은 일들이 함께하기를 덕담하는 것입니다.

기축년 첫날 독도. 이곳 사람들의 새해맞이는 뭍의 사람들보다 이릅니다. 이른 만큼 뭍을 향하는 마음은 더 간절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새해맞이는 시시각각 다른 느낌입니다. 이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새해맞이 인사를 올립니다.

2008년 12월 31일

16:50(석양의 독도)

세상은 비로소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 한 해를 맞을 준비를 마쳤다. 바다새들은 모두 섬의 바위 아래 나래를 접었고, 고기 잡던 배들은 벌써 불을 끄고 항구로 돌아갔다. 독도는 간간이 바람소리만 날카로운 가운데 적막하다. 건너다보이는 서도 어업인숙소는 문이 굳게 잠겼고 더 이상 괭이갈매기는 기웃거리지 않는다. 빛이 스러지고 서서히 어둠을 빨아들이는 바다는 저 스스로 출렁거려 물이랑을 먼바다로 밀어낸다.

17:08(일몰의 독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태양이 우리나라 본토 너머 바다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 엄숙함에 독도는 지금 숨죽이고 있다. 드디어 언 하늘에 붉게 퍼진 햇살은 그 빛을 거둬들여 무자년을 역사의 책장 속에 갈무리한다. 지난 7월, 일본의 교과서해설서 파문 따위 까슬한 기억들도 어둠 속으로 잦아들고 있다. 해가 사라진 서쪽 바다 위에는 울릉도가 운해 속에 구름인 양 도도록한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다.

17:20(불 밝힌 등대)

등대에 불이 들어왔다. 등대사무실 안 시그널에도 불이 들어와 정상 작동을 알린다. 하얀 첨탑 사이로 끊어졌다 이어지는 등명기(燈明機) 불빛은 저 자신도 이 밤 동안 몇 번이나 반복해서 돌아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무수한 반복 가운데서도, 오늘 밤만큼은, 하루에서 하루를 이어주는 불빛이 아니라 한 해에서 한 해를 건네주는 불빛이 되리란 것을 등대는 알고 있다.

20:30(경비대의 송년음악)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 음악이 병영 안의 스피커를 타고 잔잔히 흐른다. 체력단련실 러닝머신 벨트음도 멈춘 지 이미 오래다. 병사들은 모두 말없이 물속을 유영하듯 고요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금 등대 사람들도 서로 말이 없다. 텔레비전은 저 혼자 대화를 나누고 김준동 등대원의 방에서는 가족들과 전화를 하는지 간혹 조그맣게 말소리가 들릴 뿐이다.

20:45(뭍에 전하는 송년인사)

"여보세요. 이장님, 등대소장입니다. 식사는 하십니까 좀 어떠세요?" "많이 좋아졌어. 바쁜데 전화는 뭣하러 해. 요새 물이 세다면서?" "늘 그래요. 주의보가 내려 꼼짝 못하고 있죠 뭐. 사모님께서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안부 좀 전해주십시오. 어쨌든 새해는 더 건강하시고요." 등대사무실에서는 박영식 소장이 뭍에서 투병 중인 김성도 독도리 이장님과 통화하고 쾌유를 기원했다.

21:00(경비대의 송년점호)

"여러분들 지난 한 해 고생 많았습니다. 오늘 저녁 모두들 좋은 꿈꾸고 새해 복 많이 받기 바랍니다. 금일 이것으로 일석점호를 대신하겠습니다." 김태식 독도경비대장이 간단한 다과와 함께 대원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덕담하며 일석점호를 취했다. 점호를 마치고도, 대원들은 한 해가 간다는 생각에, 모두 자리를 뜨지 못하고 가볍게 술렁거린다. 소대장은 불침번 정위치를 명령하고 모두 취침 준비에 들어가도록 명령했다.

2009년 1월 1일

00:00(등대원들의 신년소망)

텔레비전에서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고 새해 덕담 나누기에 부산하다. 등대 사무실. 박영식 소장과 김준동, 한대규 대원은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새해맞이를 하고 있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세 사람 모두 2년간의 독도 근무를 마무리하고 육지에서 근무하게 될지도 모른다. 늘 가족과의 헤어짐이 안쓰러웠는데 올해부터는 함께 생활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새해 종소리가 한결 희망차게 들린다.

04:30(독도의 신년 준비)

독도경비대 대원들의 내무반에는 간혹 코고는 소리와 잠꼬대가 들린다. 불침번 박효경 상경은 문간에 기대서서 올해 7월이면 제대한다는 생각을 하고는 혼자 미소 짓는다. 상황실에서는 연방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분주하다. 방송사들이 새해 아침 방송을 위해 독도경비대장과 전화로 인터뷰하기 때문에 질문지를 보내고 사전점검을 하느라 소란스럽다.

06:50(독도의 여명)

동해 먼바다 하늘이 보랏빛에서 서서히 푸른빛으로 바뀌고 있다. 수평선 근처 떠있는 옅은 구름은 조금씩 모양을 바꾸며 남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절벽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은 여전히 세차 통신탑 옆의 태극기를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막 잠에서 깨어난 섬 참새들도 일출을 예비하듯 억새숲을 날아오른다. 섬 위의 것들은 여명 속에 서서히 제 모습을 갖추어 2009년 첫 아침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07:15(경비대의 첫 점호)

등댓불이 꺼졌다. 등대는 찬연히 빛나는 태양에 무자년으로부터 기축년을 건네주고 불빛을 지웠다. 건너다보이는 서도는 어둠을 지워내고 떠오르는 첫 햇살의 축복을 받기 위해 굳건히 뿌리박고 섰다. 이른 아침 기상한 독도경비대원들은 아침 점호를 마치고 일출을 보기 위해 일렬로 서서 '한반도 바위' 위쪽 정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07:26(독도의 일출)

수평선이 붉게 물든다. 해가 뜬다. 2009년 대한민국 한 해를 비출 불덩이가 독도 먼바다로부터 떠오르고 있다. 장엄한 태양의 붉은 기운은 그 어떤 사악함도 용납하지 않을 신성함으로 빛나고 있다. 빛살은 옅은 구름을 뚫고 옆으로 퍼져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갈라놓았다. 검푸른 바다도 어느새 붉게 물들어 금빛 비늘로 출렁인다. "대한민국 사람들 가슴가슴마다 이 찬연한 빛 뿌려 평안한 한 해가 되게 하소서!"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 지난해 9월 이후 매일신문 한국 첫 독도 상주기자 전충진의 '여기는 독도'에 보내주신 애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2009년 올 한해도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을 부탁 드리며, 애독자 한 분 한 분 가정에 만복이 깃드시길 기원합니다. 매일신문 독도 특별취재팀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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