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수의 시를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는 3번이나 최종 후보에 올랐던 미당 문학상을 2007년 8월에 받았고, 2008년 4월 낸 일곱 번째 시집 '배꼽'은 만해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 시집은 또 올해 초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시집'에 선정되기도 했다. (상을 많이 받았으니 읽어보라는 말은 아니다.)
문인수 시인은 1985년 나이 40에 시 전문지 '심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그러나 그가 시 쓰기에 몰두한 것은 2000년 김달진 문학상을 받은 후부터다. 이전까지 그는 시인이었으되 '문단 밖'에 선 사람이었다. 시인은 "일찌감치 주목받았더라면 지금쯤 여기저기 어슬렁거리기나 할 텐데, (비교적 늦게 빛을 본 탓에) 아직도 부지런히 쓰고 있다"고 말한다.
시인은 지금까지 고향에 대해 썼고, (강원도) 정선과 인도에 대해 썼다고 했다. 길에 대해 썼고, 집에 대해 그리고 사람에 대해 썼다고도 했다. 연민을 썼고 비애를 썼고 분노를 썼다. 그가 지금까지 써온 것들이 시인 문인수를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고향과 길, 정선과 인도, 사람과 비애는 시인 문인수에 다름 아니다.
문인수는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났다. 성주는 이름 그대로 별이 많은 고장, 별이 맑은 고장이다. 유독 성주 하늘에 별이 많고 맑을 리 없다. 성주 하늘에 별이 많다는 것은 그 하늘이 그만큼 어둡다는 말일 게다.
시인의 고향 성주는 가야산이 푸른 이마를 드러낸 곳이고 낙동강이 발 씻어주는 곳이다. 그러나 시인은 고향의 경계를 좁게 한정짓는다. 밤하늘이 유난히 어두운 덕분에 성주의 별이 빛나듯, 고향의 범위를 좁게 한정할 때 고향은 더 절실하고 자세한 곳이 된다. 좁게 한정지을 때 고향은 비로소 깊고 넓게 폭발한다. 그가 만약 고향의 범위를 넓혔더라면, 절실한 시어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인은 고향을 그리운 곳이라고 말한다.
"참상이든 비극이든 불행이든 잔치든 과거 속으로 들어간 고향은 모두 그리움의 대상이다. 고향 성주는 내 몸이 가서 닿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내 영혼이 가서 닿는 지나간 시간이다." 시인은 고향을 어머니, 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이며 자신의 몸과 영혼이 발원한 곳, 회귀해 가는 길의 끝이라고 했다.
문인수 시인에게 시는 자기용서다. 그는 자신의 죄를 들여다보고 용서받기 위해 강원도 정선엘 자주 간다고 했다. 정선엘 가면 물안개 속에서도, 암흑 속에서도 자신이 잘 보인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죄 사함을 받은 뒤의 모습이 자신의 시라고 했다.
"나의 시는 다소 징징거리기나 훌쩍거림이다. 나의 시 쓰기는 나 자신의 결핍을 오래 들여다보는 복받치는 과정이다. 생이 껴입은 죄, 그 남루한 겨울 누더기 같은 걸 벗는 과정이 나의 시 쓰기이다."
문인수는 길에서, 정선에서 천천히 자신의 헌 데를, 헌 것을 용서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에게 정선가는 길은 마음 속으로 걷는 길이며, 젖어서 갇히는 길이다. 젖어서 갇힌 곳에서 그는 자신의 죄를, 자신의 가책을 가장 분명하게 확인한다고 했다. 문인수는 성주가 몸과 영혼의 고향이라면 정선은 우리네 한(恨)의 발원지이며 전생의 고향일 것이라고 했다.
문인수는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군더더기 없는 삶, 미끈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시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가 자신의 시를 두고 '다소 징징거림'이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시인은 "사람이야말로 절경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결국 사람 구경일 것이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냄새가 배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문인수의 시어는 말하고 싶은 만가지 사연과 달리 가난하다. 그러나 이 가난한 언어는 어떤 풍성한 언어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늙은 아버지를 오줌 누이는 중년 아들은 '쉬'라는 한 마디로 자식된 자의 마음을 드러낸다. 이 '쉬'라는 말은 또 정신은 멀쩡한데 몸은 말을 들어주지 않는 늙은 아비의 난처한 마음을 위로한다. 오줌 한번 누이는 자리에서 시인은 우주의 소리까지 담는다. 그 넓고 망망한 우주와 오줌누기를 비교할까. 그럼에도 몸뚱이를 통제할 수 없는 노인이 오줌 한번 누자면 온 우주가 도와야 함을, 뚝뚝 끊어지는 노인의 오줌방울은 우주의 탄생에 견줄 일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비 내리는 한데 손님 없이 서 있는 의자(식당의자)는 한 인간의 길고도 남루한 삶을 풍경 언어로 담아낸다. 그의 시 '중화리'는 또 어떤가. '없는 것 빼고 컹컹컹컹 다 있다'고 노래함으로써, 이곳이 노인들만 사는, 개짓는 소리만 외로운 고장임을 드러낸다.
술자리에서 문인수는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하다.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누군가 이야기할 때 말을 거드는 법이 없다. 자신이 이야기하는 중에 누군가가 끼여들기라도 하면 금세 입을 다문다. 그래서 그와 이야기할 때면 그도 상대도 목청을 높일 일이 없다. 만취하면 노래 부르는 사람, 그가 좀 취했다 싶으면 사람들이 노래하라고 부추긴다.
'다시는 노래 안 한다.'
공언했던 시인이지만 한잔 술이 돌면 그는 또 구성진 노래를 부른다. 그가 노래할 때 사람들은 손뼉을 치지 않는다. 문인수의 노래는 손뼉치거나 젓가락 장단 맞출 그런 노래가 아니다. 옆자리 술꾼들은 앉은 채로 그저 몸뚱이를 좌우로 흔들며 구성진 그의 노랫가락을 타고 이리저리 흐를 뿐이다. 길지 않은 그의 노래가 끝나면 사람들은 흐리멍덩한 눈으로 그에게 술잔을 권하곤 한다. (단언하지만 그의 노래는 사람을 취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내가 또 노래 불렀어? 이게 무슨 꼴이야. 다시는 노래 안 불러."
문인수 시인은 그다지 냉정한 사람이 못되는 듯하고, 그러니 취하면 또 노래할 것이다. 그래서 그와 마시는 술자리는 여전히 행복할 것이다.
이전에 술자리에서 시인에게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나는 소설이란 걸 쓰고 싶지만 그걸 위해 처자식의 생계를 외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기자의 이 말에 깊이 동의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인 정도가 아니라 진실로 이 말에 공감했다. 그럼에도 문인수의 삶은 생활과는 거리가 있었다. 1975년 3월에 결혼한 그는 결혼 직후부터 이른바 '백수생활'을 했다. 1990년 9월부터 1998년까지 8년 가까이 지역의 한 신문사에서 근무했던 것을 빼면 그는 늘 근면한 아내의 방편에 기대어 살았다. 언젠가 그는 취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상 받았을 때 기뻤던 것은 집에 몇 푼이나마 돈을 갖다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 문인수는?=1945년 경상북도 성주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 중퇴, 1985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 대구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수상. 시집으로 '배꼽' '쉬!' '홰치는 산' '뿔' '동강의 높은 새' 등이 있다.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