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태의 중국이야기] 소수민족의 세시풍속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에 대한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설날을 새로운 해의 시작일이라고 정해 놓았습니다. 참으로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횡포입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면 가을에 거둔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두는 것이 먼저일 수도 있을 텐데 왜 뿌리는 것을 시작이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결국 뿌리는 것이 시작이라는 생각이 봄을 사계절의 시작으로 만들었고, 설날 또한 겨울과 봄 사이로 정해버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음력 정월 초하루나 양력 1월 1일을 새해의 시작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고대 티베트인들에게는 한 해의 시작이 여름이었습니다. 보리가 익어 황금색으로 변하는 6월 무렵 추수를 하기 직전에 '망과절(望果節)'을 지냈습니다. 설날이 되면 사람들은 전통의상을 차려 입고 말에 올라 풍성한 들판을 돌며 새해를 축원하였습니다. 자신을 즐겁게 하고 땅을 지키는 신을 즐겁게 하려고 말을 탄 채 활시위를 당기는 기예를 자랑하기도 하고, 폭죽을 터트리며 미친 듯이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티베트 라사에서 동쪽으로 400㎞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부(工布)지역은 토번왕조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내려오던 종교적 전통에 따라 지금도 장력(藏歷) 시월 초하루(음력 9월 1일 정도)를 설날로 삼고 있습니다. 티베트지역에서 설날이 정월달로 옮겨진 것은 서기 13세기 무렵 사자(薩迦)왕조가 티베트를 통치하면서부터라고 하는데, 그때에도 농민들의 경우는 종종 12월에 설날을 지냈습니다. 정월이 되면 봄이 시작되어서 농사일이 바빠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설 풍속도 가지각색입니다. 대부분의 티베트인들은 설날에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가장 값진 장식을 합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신왕(辛者曲杰)이 거울로 인간세상을 살펴보는데, 사람들이 예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으면 기뻐하여 은혜를 내리고 추한 옷을 입고 있으면 기분이 상하여 재앙과 질병을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월 초사흗날에는 라사 사람들이 모두 모여 동편에 있는 보병산(寶甁山)과 서편에 있는 약왕산(藥王山)에 올라 각종 깃발을 꽂고 산신과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5일째가 되면 라사 외곽의 농부들은 '쟁기절'을 성대하게 치릅니다. 절기에 맞는 복장을 하고는 건장한 황소를 예쁘게 분장시킵니다. 머리에는 수요우(소나 양의 젖으로 만든 버터)로 그림을 그려 붙이고, 뿔은 붉은 깃발과 오색 깃털로 장식합니다. 등짝은 갖가지 보석으로 장식된 비단으로 치장시키고, 꼬리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비단 조각들을 매답니다. 마치 여인네를 화장시키듯 말입니다.

윈난의 리장(麗江)지역에 거주하는 나시족의 세시풍습은 또 다릅니다. 대부분은 설날 조상에게 제사지내고, 둘째 날 산 사람끼리 인사를 나누고, 셋째 날 하늘에 제사지내고, 무당이 각 가정을 돌며 불경을 외웁니다. 좀 독특한 점이 있다면 개에게 쌀밥과 돼지고기를 주는 풍습인데 개가 인간들에게 오곡의 종자를 전했다는 고대 전설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특이한 종족이 있습니다. 나시족의 일파인 모소인(摩梭人)입니다. 모소인은 윈난성 닝랑현 루구호(瀘沽湖) 일대에 사는 소위 '동방여인국'의 종족입니다. 정월 초하루가 되면 각 가정에서는 만 13세가 되는 남녀에게 '바지나 치마를 입히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화로가 놓인 사당에 남녀를 따로따로 수기둥과 암기둥에 묶고는 양쪽 발로 양식자루와 돼지고기를 밟게 합니다. 그리고는 남자에게는 외삼촌이 바지를 입혀주고, 여자에게는 어머니가 치마를 입혀줍니다. 무당의 염불과 질퍽한 춤사위로 의식이 마무리되면 이들은 좋아하는 이성과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습니다. 소위 그들 방식의 결혼식을 치르는 것입니다. 의식이 끝난 딸에게 어머니는 새로운 방 하나를 마련해주는데, 밤이 되면 남자가 찾아와서 하룻밤을 지내고 새벽에 떠납니다. 말하자면 '남자는 장가가지 않고 여자는 시집가지 않는' 결혼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없습니다.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혼인관계에 있는 남녀를 '아소'라 하고, 혼인방식을 '주혼(走婚, 떠나는 결혼)' 또는 아소혼(阿肖婚)이라고 합니다. 남녀 아소 간에 결혼관계가 이루어지더라도 남녀 모두 어떠한 법률적 구속이나 책임도 없고, 각자 자신의 어머니 집에서 생활을 합니다.

설날 풍습, 참으로 가지가지입니다. 무엇을 하시든 어떻게 지내시든 홀린 듯 귀향길에 오르는 당신은 설날의 주인공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기축년 한 해 복(福)폭탄이 당신과 당신의 가정을 초토화시키길 기원합니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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