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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백두를 가다] 철도 교통의 요충지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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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역 터임을 알리는 주춧돌과 역의 수장인 찰방의 선정비. 죽령 옛길이 시작하는 곳에 위치한 창락역은 조선시대 경북 북부지역의 교통을 담당했다. 이를 알리듯 인근에 중앙고속도로가 나있다.
▲ 옛 역 터임을 알리는 주춧돌과 역의 수장인 찰방의 선정비. 죽령 옛길이 시작하는 곳에 위치한 창락역은 조선시대 경북 북부지역의 교통을 담당했다. 이를 알리듯 인근에 중앙고속도로가 나있다.

영주는 철도 교통의 요충지다. 현재 코레일 경북북부지사가 있어 경북 중·북부지역의 철도 업무를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옛 철도청 시절 영주철도청은 경상북도는 물론 충북과 강원도 일부 지역까지 아우를 정도로 관리 영역이 컸다. 그만큼 영주가 차지하는 철도 교통의 비중이 컸다는 것이다.

죽령이 시작되는 곳인 풍기읍 창락리에는 옛 역(驛·통신 및 운송기관)의 규모를 알 수 있는 유적이 있다. 옛 역의 주춧돌과 당시 역의 수장인 찰방 안모씨의 선정비가 서 있고, 교통의 요충지임을 알리듯 바로 옆에는 중앙고속도로가 나 있었다.

창락역의 규모는 어느 정도고, 그 기능은 어떠했을까?

조선 초 전국에는 538개의 간이역이 있었고, 전국을 다시 40구역으로 나눠 간이역을 관리하는 중심역을 뒀다. 창락역이 바로 중심역이었다. 창락역은 당시 순흥, 평은, 영주, 옹천, 안동, 유동, 예천, 예안, 봉화 등 9개의 간이역을 거느렸다.

지금의 역장에 해당하는 찰방에게는 종6품의 벼슬을 내렸고, 찰방 아래서 역의 사무를 담당하는 역리만 23명이나 됐다. 역리의 일을 돕는 일종의 사무 보조원도 18명이 있었다고 한다. 또 역과 역간의 문서 등 소식을 전하는 사령이 10명이 있었고, 역의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노비도 32명이나 됐다. 역마 역시 16필이 있었다고 한다.

창락역은 공문서의 전달, 출장길의 관리와 외국 사신의 숙박, 마필 공급, 공물과 관물 수송 등을 돕던 기관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코앞에 죽령이 있어 경북 북부지역과 서울과의 소통 기능도 담당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영주가 교통의 요충지였다는 것을 조선시대때부터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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