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체인 ㈜서한은 지난달 신입사원 공채를 하면서 홍역을 치렀다. 10여명 정도를 모집할 계획이었고 100명쯤 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1천여명이 원서를 냈기 때문. 대구경북뿐 아니라 서울 등 전국에서 응시자가 밀려들었고 명문대 출신, 석사 학위 소지자 등 우수 인재가 너무 많아 선발에 상당한 고심을 했다. 결국 긴급 임원회의를 열고 당초 채용 계획을 변경해 모집인원을 30명으로 늘려 뽑았다.
인사담당자는 "우수인재를 놓치기 아까워 무리를 해가며 채용인원을 늘렸다. 정말 취업난이 심각한 수준이더라"라고 했다.
#사례
중국에서 6년간 유학을 마치고 지난해 3월 고향인 대구로 돌아온 김모(25·여)씨. 중국어교육과를 졸업했고 언어실력에 자신이 있었던 김씨는 요즘 한국, 특히 대구경북의 취업난을 실감하고 있다.
"중국도 청년실업 문제가 심하지만 상대적으로 대학 졸업자가 적어 한국 같은 취업난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 지난해 서울과 제주도 등 타지 업체에 합격을 했지만 부모님 권유로 지역내 업체를 찾고 있는데 아예 신입사원 채용 기업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씨는 지난달 정부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행정 인턴직에 원서를 내 8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돼 이달부터 월 100만원에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일자리가 없어요=금융위기에 따른 경기한파가 취업에 나선 청년들을 절망으로 내몰고 있다.
기업들이 잇따라 채용인원 축소에 나서면서 그나마 찾기 어렵던 일자리가 더욱 사라지고 있는 탓이다. 고용시장 위기는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취약한 대구경북에서는 더욱 심각한 상황.
"전문대를 포함한 지역의 대졸자 수가 연간 6만명이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지역내 5인 이상 기업에서 제공되는 일자리는 2만5천개 정도에 불과합니다. 가뜩이나 취약한 지역 고용 상황이 올해는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구경북 전문대학 취업담당관협의회 김완수 사무국장은 '청년실업'이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됐고 대구경북은 정도가 더 심하다고 했다.
지난해 2월 지역 모 사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모(28)씨. 졸업성적은 물론 토익성적까지 흠잡을 데가 없지만 아직 도서관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여곳에 원서를 냈고 3곳은 면접까지 봤지만 결국 탈락했다"는 김씨는 "최근 들어서는 신입사원을 뽑는 기업도 찾아보기 힘들어 친구들처럼 아예 공무원 시험으로 진로를 바꿀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중에 있다"고 했다.
졸업 시즌을 맞았지만 요즘 대학가는 우울하기 그지없다. 미취업 상태의 졸업생이 많은 탓이다.
대구경북 각 대학들이 대학정보 공개 사이트인 '대학 알리미'에 내놓은 2008년 취업률은 60~70% 정도. 하지만 계약직이나 파트타임 근무 등 임시직을 제외한 정규직 취업률은 30~50%로 뚝 떨어진다. 졸업생 2, 3명 중 1명만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는 셈이다.
◆불안한 미래=더욱 골이 깊어진 청년실업은 아직 통계치로는 제대로 잡히질 않는다. 2월 졸업생 취업 결과가 3월부터 나오는데다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시장 불안이 지난 연말부터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 하지만 지난해 4/4분기 기준으로 대구 청년 실업률은 8.9%로 이미 전국 1위다. 전년에 비해 1.0%포인트 높은 수준이며 전국 평균(7.6%)을 2%포인트 이상 상회한다.
지난 4/4분기 대구 실업자수는 4만9천명으로 전분기에 비해 8천명이 증가했고 증가 속도도 빠르다.
전국적으로도 20, 30대 취업자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1천만명 밑으로 떨어졌다.
통계청이 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0, 30대 취업자는 990만4천명으로 전년의 1천2만7천명에 비해 1.2% 줄었다. 20, 30대 취업자 수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1천100만명 선 아래로 떨어진 이후 10년간 1천만명 선을 유지하다 처음으로 900만명대로 추락한 것.
문제는 '청년실업'이 올해 더욱 심각해질 것이란 우울한 전망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올 들어 경기침체 속도가 빨라지면서 신규 취업자 수가 전국적으로 3만명 줄어들 것이란 예상치를 내놓고 있으며 한국경제연구원은 10만명까지 감소할 것이란 통계치를 발표했다.
경북대 김기동 진로지원실장은 "지난해 같으면 3월부터 대기업들이 취업설명회를 열기 위해 사전 연락을 해왔지만 이미 2월에 접어들었는데도 연락이 오는 기업들이 없다"며 "매일 들어오던 정부기관이나 공기업의 추천 의뢰서도 올 들어서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청년 인턴제' 등 일시적 해결책 외에는 '청년 실업'에 대한 마땅한 처방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학 취업담당자들은 "한국 고용시장은 일자리 수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대학졸업생을 배출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데다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결국 청년실업 '100만명 시대'까지 왔다"며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청년 실업을 예방하기 위한 대학 구조조정과 고용 시스템의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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