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중반 잉글랜드 랭커스터 왕조의 헨리 6세는 무능한 군주였다. 그는 아버지 헨리 5세와 외조부인 프랑스 국왕 샤를 6세가 죽자 생후 한 살에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하지만 백년전쟁에서의 패배로 프랑스 국왕 지위를 잃는가 하면 신경쇠약 등으로 왕의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왕위 계승을 둘러싼 잉글랜드 귀족 간 피비린내 나는 30년 전쟁에 빌미를 제공했다.
'장미전쟁'으로 역사에 기록된 이 헤게모니 싸움에서 붉은 장미 紋章(문장)의 랭커스터가와 흰 장미의 요크가는 대를 이어 왕권 쟁탈전을 벌였다. 최종 승자는 랭커스터가의 헨리 튜더였다. 1485년 헨리 7세로 등극한 그는 두 가문의 화해를 위해 요크가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고 튜더 왕조를 열었다. 문장도 화합의 징표로 붉은색과 흰색을 섞은 '튜더의 장미'를 내걸었다.
근대 이전에는 가문과 집단의 상징으로서 문장의 역할이 두드러졌지만 현대에는 色(색)이 집단의 동질성이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는 기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색은 인간의 원초적 감성을 대변하는 매개물이자 집단 내외부의 소통과 차별의 신호로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축구 국가대항전 때 물결치는 색의 향연도 적과의 차별화를 위한 심벌이다. 네덜란드 대표팀의 오렌지색은 16세기 독립전쟁을 주도한 오란예 왕가의 상징이었고, 푸른색을 뜻하는 아주리(Azzurri)는 19세기 이태리를 통일한 사보이 왕가 상징색이다.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은 전 총리 빅토르 유셴코의 상징색을 내걸면서 비롯된 선거 혁명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제 검찰에 소환되자 노란 풍선을 든 노사모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심지어 노란 장미를 길바닥에 던져 밟고 가도록 했다. 노사모의 노란색이 일반인에게는 생경하겠지만 지지자들에게는 '정치 보복'이라는 해석의 방식이자 상징 언어인 것이다. 다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거나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것은 색이라는 기호의 본성이다. 색은 차별화뿐 아니라 긍지와 자부심을 담보로 한다. 이 점에서 노사모의 노란색은 그 의미를 반감시키고 있다. 이 노란 장미가 과도한 감정이입으로 결론 날지 아니면 우리 사회의 정치적 성숙도를 시험하는 리트머스가 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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