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소멸 위기 몰린 지역 生活史

'地圖'(지도)란 단어를 우리말로 풀면 '땅 그림'이다. 지표면의 형태, 물길, 마을, 도로 등을 나타낸 그림이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대하는 대부분의 지도들은 사실 땅 그림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 특수한 목적 아래 만들어진 지적도'해도 등등 '主題圖'(주제도)는 말할 나위 없고, 소위 '一般圖'(일반도)라는 것도 예외가 아니다. 이것에서조차 땅 모양은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도로와 도시들이나 강하게 부각돼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지도에서 가장 많이 기대하는 게 도로 정보인 게 이유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옛 지도는 지금 것과 다르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도로가 아니다. 크기가 작으나마 그 당시라고 어찌 길이 없었을까마는 그렇다. 대신 강조된 건 산줄기와 강줄기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살이가 바탕 하던 근원이었기 때문일 터이다. 생활권과 문화권과 방언의 구획도 그것 따라 결정됐다.

이 때문에 사람살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산줄기 흐름부터 그려내야 했을 것이다. 그 다음에야 그 사이사이에 형성되는 여러 골짜기와 물길과 들판이 드러날 수 있다. 이어 거기 자리 잡는 마을들이 온전히 위치를 드러내고, 넘어 다니던 고갯길을 표시할 수도 있다. 대동여지도 또한 산줄기를 먼저 그린 뒤 하천을 그려 넣고 고을들을 표시하며, 그런 뒤 그 사이 거리를 표시해 넣었다.

하나 언젠가부터 우리에게서 이런 전통적 지형 인식의 맥이 끊겼다. 심지어 산을 관리하거나 안내하는 기관들조차 다르잖아 보인다. 국립공원을 가 봐도 도립공원을 가 봐도 산줄기 그림은 안 보인다. 지금 그곳 안내판들에 붙은 것은 산줄기 대신 산 자체를 繪畵(회화)로 그린, 그야말로 '산 그림'이다. 정면 산줄기나 하나둘 커다랗게 흉내낸 뒤 주변 수많은 산줄기는 대충 처리하고 만다. 그리고는 거기서도 길(등산로) 그려 넣기에 더 열심히 매달린다.

하나 그런 회화성 산 그림으로는 등산로나마 절대 제대로 그려 넣을 수 없다. 산줄기가 드러나지 않고 골짜기가 나타나지 않는 그림에 더 이상 뭘 표시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산줄기 없는 산 그림을 통해 산을 보는 게 습성이 되다 보니 어느 골짜기'고개(재)'봉우리가 중요한 지형인지 구분하는 감각마저 약해지기 십상이다. 그 각각의 전래명칭을 잘 챙겨 둬야겠다는 생각이 날 리 만무해지는 건 물론이다. 산줄기 물줄기에 바탕 해 쌓아 올려졌던 각지의 生活史(생활사)와 전래 문화가 거의 주목받지 못한 채 소멸돼 가는 건 그 다음에 나타나는 더 심각한 부작용이다.

이렇게 보면 산줄기 그림은 결코 단순한 땅 그림이 아니다. 선조의 오랜 생활상까지 그 위로 오롯이 배어 오르는 게 바로 그 그림이다. 오랜 삶의 여정이 농축된 고개(재)는 그 그림에 바탕 해야 위치가 제대로 짚일 수 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들, 수십 리 떨어진 시장을 오가던 장꾼들의 길도 그 그림이 있은 다음에야 윤곽을 드러내면서 오래 쌓은 이야기의 돗자리를 깔 수 있다.

그러니 전래 문화를 제대로 採錄(채록)해 두려면 산줄기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런 다음 거기 있는 지형지물들의 전래 명칭을 들어 두고, 거기 얽힌 전설들을 기록해 둬야 하며, 골골에 배어 있는 사람살이 이야기를 증언받아 놔야 한다. 멀리 이어가던 시장 길을 기억하고 그 길을 다녔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받아 적어 놔야 한다.

이 일은 지금 아니면 다시 기회 얻기 불가능하다. 입으로나마 옛 이야기를 傳承(전승)해 오던 어르신들이 거의 천수를 다해 가는데도 이어받을 세대는 끊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그냥 둬버리면 우리 옛 삶의 흔적들도 어르신 세대가 끝나는 것과 함께 영원히 이 땅에서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다. 고속도로 건설과 4대 강 사업은 좀 더 있다 해도 큰 탈 없겠지만 우리의 전래 문화 채록 기회는 지금 놓치면 다시 얻을 수 없다. 큰돈 들 일도 아니다. 그리고 이건 분명 지방정부들의 몫이다.

朴 鐘 奉 논설위원 pax@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