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동안 자동차로 인한 사고는 22만여건. 40만명의 사상자가 났고 사망자만 5천870명에 이른다. 차량 1만대당 2.9명이 다치거나 사망했고, 인구 10만명당 12.1명이 자동차 사고를 내거나 당했다. 이는 OECD 평균(1.5명, 9.3명)과 비교해 높은 수치다. 이 정도면 자동차가 더 이상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될 법하다.
자동차 사고는 운전자의 안전운행 불이행도 원인이지만 차량 자체의 결함으로 발생하는 건수도 적지 않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자동차 회사는 앞다퉈 리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리콜이란?
자동차의 결함을 회사 측이 발견하여 생산일련번호를 추적·소환해 해당부품을 점검·교환·수리해 주는 일종의 소비자보호 제도이다. 성격상 반드시 공개적으로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공표하고 안내문을 발송해 특별점검을 받도록 연락해야 한다.
◆리콜 현황
올 6월 현재 리콜이 가장 많은 회사는 현대자동차이다. 쏘나타 1만2천543대를 비롯해 아반떼 1천346대, 그랜저 8천133대 등을 리콜했다. 다음으로는 카렌스(3천981대) 스포티지(2천917대) 등을 리콜한 기아자동차였고, SM시리즈를 시판하고 있는 삼성자동차가 800여건으로 뒤를 이었다.
리콜 사유는 제동등 스위치 불량으로 불이 들어오지 않고, 브레이크 작동 불량 등 심각한 안전 장치 결함이었다.
이 밖에도 리콜을 통해 자동차 회사들이 심각한 차량 결함을 시인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우버스의 경우 내장재의 난연성에 문제가 있어 화재가 발생할 때 화염전파 속도가 빨라 인명피해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명품 자동차의 대명사인 벤츠 S500시리즈의 경우 노면이 고르지 못한 도로를 장기간 운행할 경우 완충장치 강도가 부족해 핸들조작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결함이 발견되기도 했다.
◆'리콜'의 허점
수년전 자동차 급발진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하지만 급발진을 차체 결함으로 인정해 리콜한 자동차 회사는 현재까지 단 한 곳도 없는 현실이다.
주된 이유는 자동차 리콜이 원칙적으로 제작회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에서 결함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만 자체적으로 교환과 수리를 해 주는 식으로 리콜제가 운영되고 있어, 업체가 결함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 리콜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급발진을 제외하고라도 원인 규명이 안 되고 자동차 회사가 발뺌할 경우 손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리콜의 역사는 매우 짧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결함 때문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91년 차종에 대한 배출가스 기준심사를 기준으로 시행한 리콜제는 같은 차량에서 3회 이상 고장이 반복되는 경우에만 접수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
◆리콜 운영은 잘 되고 있나?
지난해 전체 자동차 사고 건수는 22만건에 달하지만 이 중 자동차 결함으로 인한 사고 건수는 8건에 불과하다. 시민단체 및 자동차 동호회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자동차 회사들이 결함을 인정하지 않아 차제 결함으로 인한 사고 발생 건수를 의도적으로 축소했기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자동차 제작사들이 자동차 결함을 최소화하기 위한 리콜 등을 실시하지만 정작 필요할 때는 결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소비자보호원은 최근 운행 중 시동이 꺼지는 심각한 안전 결함을 갖는 차량을 공개했다. 현대 쏘나타 38대, 르노삼성 SM5 35대, 기아차 모닝 32대 등 총 148대가 운행 중에 시동이 꺼졌다. 이 중 결함을 인정받아 수리를 받은 자동차는 8대에 불과했고, 차량을 교환받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리콜은 이처럼 허술하게 진행되는 부분도 있다. 주된 이유는 리콜의 강제성이 없다는 점이다. 자동차 회사는 결함을 공고할 의무만 있을 뿐이지 일일이 문제 있는 자동차를 찾아다니면서 수리해주거나 교환해 주지 않는다.
올해 6월 현재 가장 많은 리콜을 한 현대 쏘나타의 경우 1만2천543대가 리콜 대상이었으나 실제로 리콜을 해 수리·보상해 준 자동차는 7천585대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크고 작은 결함을 가진 채 도로를 활보하고 있는 셈이다.
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올해 9월 현재 자동차와 관련한 신고 건수는 승용차만 5천336건에 이른다. 승합차(488건)와 화물차(347건)까지 합치면 6천건을 넘는다. 이 중 자동차 제작사로부터 수리·보상을 받은 건수는 10건도 안 됐다.
◆올바른 리콜제 활용
'완벽한 제품은 없다'는 관점에서 소비자들이 리콜제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현재 자동차 결함을 신고 받고 있는 단체는 소비자보호원,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맹, 소비자시민모임 등이다. 이를 통해 자동차 결함이 발생할 경우 적극적으로 신고해 자신은 물론이고 같은 결함으로 인한 타인의 희생도 사전 예방할 수 있다. 사업자들도 적극적으로 소비자를 보호하고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소비자들과 정부는 공개적으로 실시하는 업체에 대해 격려와 신뢰를 보내야 올바른 리콜제도가 정착될 수 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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