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을 하루 앞둔 날, 초입의 겨울답지 않은 제법 포근한 바람을 가르고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한 수졸당으로 향했다. 수졸당은 진성 이씨 하계파 종가다. 수졸당 15대 종부 고와당 윤은숙(67) 여사를 만났다. 저녁 시간에 도착한 취재진을 위해 칼국수 한 그릇을 내놓으며 맞아 주었다. 종부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로 오랫동안 계속됐다.
종부의 친가는 파평 윤씨 소정공파이며 네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친정 아버지께서는 네 딸을 아주 엄하게 키웠는데 동네 어른들은 네 자매를 두고 "자(저 아이)는 시집살이를 해보고 시집을 간다!"고 말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부친 앞에서는 함부로 고개를 들 수도 없었고, 당신의 말씀이 다 끝날 때까지 늘 고개를 숙이고 바른 자세로 앉아서 경청을 하고 난 뒤 그 뜻을 가슴깊이 새기게 했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사람들과 남편에게 지켜야 할 삼강오륜의 덕목을 배웠으며, 한자와 한글을 익혔다. 다른 문중의 이야기이며, 다른 집 며느리 이야기 등을 해주었는데 이는 네 자매가 혼인해 부녀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의 덕목을 가르치고 이를 바탕으로 종부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재산이 되게 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런 아버지의 교육 방침은 힘든 종부로서의 삶을 살기 위한 밑바탕이 되었으리라.
◆ 어려운 종부의 삶 속으로
그녀가 갓 시집 왔을 때 수졸당의 사정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시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시어머니, 그리고 어린 시동생들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철도청에 근무를 하게 되었고 월급은 매월 일정하게 나왔으나 밑으로 시동생이 셋에다 시어머니 봉양, 수없이 많은 제사, 그리고 자녀양육에 많은 돈이 나갔기 때문에 생활은 여유롭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시어머니는 힘든 그녀의 삶을 보듬어주었고, 시동생들과 자녀들은 그녀를 잘 따르며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또 그녀의 친가는 작은집안이었기 때문에 제사를 지낸 적이 거의 없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큰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 음복을 하러 가고 싶어도 그녀의 어머니는 "음식은 얻어먹는 것이 아니다"고 해 제사 음식을 먹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제사상 구경도 거의 하지 못하며 살았던 터라 10번이 넘는 종가의 제사는 처음에 감당할 수 없는 큰 짐이었다고 한다.
◆ 불천위, 10월 시제 등 한해 제사 10차례 넘어
보통의 종가와 마찬가지로 수졸당에도 한 해를 제사로 시작해 제사로 끝낸다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봉제사가 많았다. 불천위 2번, 10월 시제, 4대 봉사와 설 차례 등만 해도 10번이 넘는 제사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수졸당에서 불천위 제사보다 더 중요시하는 제사가 있는데, 6월 보름인 유둣날 지내는 '유두차사'라 부르는 제사다.
유두차사란, 유둣날(음력 6월 15일)에 그 해에 제일 먼저 나는 햇곡식, 햇과일을 간단하게 올려놓고 사당에서 지내는 제사다. 한 해에 가장 먼저 나는 곡식으로는 밀, 옥수수, 감자가 있고 과일로는 자두, 참외, 수박이 있다. 감자로 무 없이 고기를 곁들여 넣은 감자탕이 올라가고, '누들로드'에 실린 바 있는 하계국수까지 제사상에 올라가게 된다.
그녀가 시집을 온 지 50여년 동안 유두차사만은 소홀히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100년이 넘게 내려오는 하계파만의 전통과 다른 곳에서는 지내지 않는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 예술인의 길
종부로의 삶은 쉬운 길이 아니다. 그녀의 어깨를 누르는 수많은 제사와 집안 살림, 자녀의 양육으로 인해 힘든 나날을 보낸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본래 사람은 강물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말이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 물줄기는 예천에 있는 고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고향으로 가는 물줄기를 보며 어렸을 적 생각하며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기 때문이다.현재 그녀는 서예, 민화그리기, 가사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2009년 4월 6일 개최된 경상북도 서예전람회에서 출품작 343점 가운데 그녀가 출품한 한글 흘림체 작품 '해동만화가'가 대상을 수상했다. 해동만화가는 우리나라 최초 국가인 고조선이 성립되기 이전부터의 우리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한 가사이다. 붓글씨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지는 불과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자녀양육, 제사, 그리고 손님접대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로 농한기나 짬이 나는 시간에 주로 붓을 손에 쥐었다. 굳이 붓으로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볼펜으로 쓰여진 종이보다는 한지에 쓴 글이 더 오래 보존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종부로서의 그녀의 삶과 인간의 도리에 대해서 쓰고 그것을 후세에 전하려는 것이 그녀의 목적이다.
◆"종부의 삶, 되물림해주고 싶지 않아"
그녀에게 "종부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종부란 양면의 세계 즉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종부의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보통 가계보다 살림의 배가 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추앙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힘든 가사일과 제사준비, 손님맞이 등으로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을 준비하느라 진이 빠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종부의 삶이란 양면의 세계라고 대답을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조차도 종부에 어울리지 않고 종부로서의 덕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 말을 하고 있다. 그녀가 말한 종부의 덕목이라는 것은 종부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야 하고 고상한 취미 또한 있어야 하는데 그녀는 그것을 갖추지 못했다며 겸손의 말을 전했다.
수졸당에서 먹었던 칼국수와 그녀의 한이 담긴 가사 한 자락은 가을밤을 긴 여운으로 동행해 주었다.
(사)경북미래문화재단 권설희 ksh880112@nate.com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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