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봉사하는 사람들]'봉사의 달인' 정명숙씨

"봉사 매력에 빠지면 그만둘 수 없지요"

총 2만4천357시간.

정명숙(53'대구 수성구 범물동)씨가 20여년간 대한 적십자사 봉사회를 통해 자원봉사한 시간이다. 이 기록은 대구에서 최고 기록이다.

그는 지난 20년간 봉사현장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원봉사와의 첫 만남은 둘째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1989년. 적십자에서 어머니회로 자원봉사를 설명하러 찾아왔다. 많은 학부모들이 자원봉사를 함께 시작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모두 그만두었다. 하지만 정씨는 달랐다. "봉사는 마약과도 같아요. 한번 시작하니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들게 돼 그만둘 수가 없었죠."

정씨의 일주일 시간표는 모두 자원봉사로 채워져 있다. 월요일 오전은 중증 장애인 목욕봉사, 오후엔 도시락 배달을 한다. 화요일은 다문화가정 요리 및 한글교실 보조 및 아이들 돌보는 일을 하고 수요일 오전엔 영남대병원에서 안내를, 오후엔 도시락 조리 및 배달을 나간다. 목요일은 복지관에서 홀몸노인들에게 드릴 음식을 조리하고 금요일 오전엔 목욕봉사와 500인분의 밥을 짓는다. 토요일은 다문화가정 관광도우미 및 건강상태 체크, 일요일은 정씨가 결연한 조손가정에 반찬을 조리해 드리고 직접 방문한다.

결연 가정에 갖다주는 반찬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주일 동안 한 가족이 먹을 수 있도록 국 두 가지, 밑반찬 서너 가지, 카레나 짜장 한 가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잡채나 튀김, 전 등도 조금씩 준비한다. 때로는 하루 종일 부엌에서 일해야 한다. 김장철인 요즘에는 봉사단체마다 김장을 해, 매일같이 김장에 팔을 걷어붙인다. 단 하루도 자원봉사의 시계가 멈추는 날이 없다.

"한번은, 커다란 솥 두 개에 삼계탕을 한가득 끓였어요. 남편은 내심 기대하며 기다렸는데, 나중에 국물 한 방울 안남기고 모조리 결연 할머니들께 가져다드렸어요. 남편은 두고두고 서운해 하더라고요."

그래도 남편 박윤화(60)씨와 아이들 용균(29), 소현(27)씨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봉사에 매진해올 수 있었다. 남편은 쉬는 날에도 무거운 식사를 배달해주고, 아이들은 착하게 커, 대를 이어 봉사를 한다.

큰 국제대회 봉사에도 정씨는 빠지지 않는다. 영문학과를 졸업한 정씨는 대구에서 열린 국제대회엔 빠진 적이 없다. 앞으로 열릴 세계소방관대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에도 영어 통역 봉사 테스트를 통과했다. 이런 개인적인 봉사는 적십자사 자원봉사 시간에도 잡히지 않는다.

그는 20년간 가장 사회 밑바닥을 발로 뛰며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다. 어려운 사람들을 발견하면 직접 동사무소에 서류를 올리기도 한다. 귀찮다며 자원봉사자를 꺼리는 직원들도 있지만 그래도 봉사의 손길을 멈출 수는 없다.

"20년 전에는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이 많았다면, 요즘엔 조손가정이 크게 늘었어요. 경제 위기 이후로 가정을 버리는 부모들이 많아지면서 아이들도 상처받고 몸이 아픈 할머니'할아버지들도 큰 부담을 떠안게 된거죠. 그리고 구호도 '부익부 빈익빈'이에요. 누군가는 쌀이 썩어날 정도로 많이 들어오는 반면 어떤 집은 당장 먹을 것이 없어요. 그런 사람들을 찾아서 나누는 것이 바로 저희들의 몫이죠."

그래도 결연을 한 조손가정이 자신으로 인해 변화될 때면 큰 보람을 느낀다.

"할머니들은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해요. 밑반찬보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더 고맙다고들 하세요. 자식보다 더 보고 싶다며 기다리시죠. 낯선 사람을 기피하고 내성적이던 결연가정의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저를 만난 이후로 성적도 크게 오르고 성격도 밝아졌어요." 몸이 아파도, 쉬고 싶다가도 자원봉사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다.

요즘엔 다문화가정의 여성들을 돌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됐다. 아이들도 많이 낳고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한국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그들이 한밤중에라도 전화하면 나가서 도와주고 길 모르면 안내자로 나서기도 한다. 최근엔 밭에서 배추를 뽑아 절여 김치를 담가주기도 했다. 이런 그를 따라 자원봉사의 길로 들어선 주변 사람도 많다. 자원봉사의 전도사인 셈이다.

"이미 자원봉사에 중독됐으니 끊지는 못하겠죠? 그저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살며 자원봉사를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으니까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