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지인에게 '쓸쓸하면서 멋진 사람 어디 없을까'하고 물었더니 아트갤러리 청담 '김성락(53) 관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트갤러리 청담은 청도 유등연지를 바라보고 지은 갤러리로, 질 높은 기획전과 멋진 풍광으로 이미 잘 알려진 곳이다.
겨울의 유등연지를 찾았다. 봄 여름, 연꽃이 활짝 핀 유등연지는 그대로 절경이다. 하지만 죽은 듯 보이는 황량한 겨울 연못은 겨울을 나는 철새들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겨울을 오롯이 살아내고 있는 유등연지에선 비릿한 생명의 냄새가 난다. 겨울 유등연지를 배경으로 김 관장을 만났다.
김 관장은 '국민 드라마'로 불렸던 '모래시계'의 무대감독을 맡는 등 방송사에서 21년 동안 무대 미술을 해왔다. 하지만 오랜 직장생활도 가슴 깊숙이 자리한 '화가'로서의 꿈을 삭여주진 못했다. 서양화를 전공하며 '평생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었던 청년 시절 자신에 대한 미안함일까.
"어렴풋이 전원 생활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 1995년 청도에 놀러왔다가 유등연지 앞 이 땅을 보고 덜컥 사버렸죠. 이곳이 청도 팔경 중 하나라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어요."
그리고 여기에 갤러리를 짓기 시작했다. 2005년 완공 후 식구들끼리 조촐하게 외식을 하며 갤러리 오픈을 기념했다. 덜컥 갤러리를 지었지만 미술에 대한 열정만 있을 뿐, 갤러리를 어떻게 경영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2006년 한 해는 소장품만 걸어두었다.
"갤러리스트는 간단치가 않아요. 생각보다 복잡하고 무척 전문적인 작업이죠." 겁 없이 갤러리에 뛰어들었지만 그는 운이 좋았다. 2007년, 단군 이래 미술시장이 최고 호황을 맞았던 것. 3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그는 '기획 전문 갤러리'로서 청담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지켜보던 작가와 관람객들의 신뢰도 얻었다. 지금은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갤러리로 손꼽히고 있다.
평생 드라마 세트장을 지었다 허물었다 하는 것이 일이었던 사람이다. 드라마의 내용에 가장 어울리는 세트장을 지어왔던 그는 제2의 꿈을 펼칠 자신만의 세트장을 어떻게 꾸몄을까?
"아름다운 갤러리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외부마감은 노출콘크리트로 한 현대적 콘셉트의 갤러리를 꿈꿨죠. 기술적인 자문을 하긴 했지만 전체 콘셉트와 세부적인 부분은 제가 직접 디자인했습니다. 갤러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연이죠. 자연과 호흡하는 공간을 염두에 뒀으니까요."
아트갤러리 청담은 노출콘크리트 벽에 작품을 건다. 하얀색 벽지가 아닌 콘크리트 위의 작품은 그 색감이 현대적으로 돋보이고 관람객들이 작품에 쉽게 질리지 않는다. 150㎡(45평)의 전시관을 한 바퀴 돌다 보면 그림뿐만 아니라 슬쩍슬쩍 유등연지가 보이도록 설계했다. 자연과 소통의 틈새를 마련한 셈이다. 조경도 김 관장의 솜씨. 소나무를 심되 풍광을 해치지 않도록 세심히 고려했다.
그는 머리가 좋은 갤러리스트다. 1관에는 현대미술 전시실과 아트숍 겸 커피숍을, 2관에는 도자기 전시실 및 전통찻집 공간을 마련했다. 도자기에만 탐닉하던 관람객도 어느덧 서서히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현대미술 애호가들도 도자기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된다. 1년간 커피만 마시러 오던 사람도 이제 그림을 산다.
잘 짜인 갤러리 건물은 이렇듯 스스로 창조적인 생명력을 갖는다. 오가는 사람들이 예술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걸 보면 김 관장은 뿌듯하다. 김 관장 스스로 '청담이 전원에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커피를 마시며 풍경을 감상하러 오기도 하고, 그림을 보러 오기도 하죠. 복합적으로 여러 공간이 어우러지니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특히 부산, 울산, 창원 등에서 많이 찾아와요."
좋은 작가,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즐기면서 이제 마음 깊은 곳에서 화가의 꿈을 접었다. 하고 싶은 것과 표현능력은 다르다는 것을 깨끗하게 인정한 셈. 대신 좋은 작품을 가려내는 시선은 날카롭게 벼르고 있다. 벌써 2011년 전시의 일부까지 기획돼 있다.
"청담이 사람들의 문화적 안목을 높이는 데에 일조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역할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속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이 들어가는 제 모습도 아름답겠죠."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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