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닥터 토크박스] 의사의 길

첫 조카가 수능시험을 마치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요즘은 원서를 여러 곳에 넣을 수 있어서 수험생이 느끼는 부담이 적어지고 선택의 폭도 넓어진 듯하다. 그러나 의대 진학은 예외여서 20여년 전 필자가 경험했던 때보다 더 어려워진 듯하다.

얼마 전 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병원을 찾았다. 손가락 뼈가 골절되어 구부러지는 변형이 있었는데 다친 지 무려 한 달이나 지나서 병원을 찾았다. 그 와중에도 지나칠 정도로 학교 수업과 시험을 걱정했다. 부모와 학생 모두 정도를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던 참에 그 학생의 어머니가 그러셨다.

"선생님처럼 의대에 가려고 하는데 조금도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어요. 그리고 의사가 되려고 하는 아이니까 손이 완벽하게 회복돼야 해요."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수술 날짜를 잡고 통원 치료를 하기로 했다. 환자는 수술 후 마취가 풀릴 때까지 응급실에 있다가 귀가했는데, 그 시간에도 참고서를 보며 공부를 했다. 그 후로도 그 학생의 어머니는 회복이 잘 되고 있는지 불안하다는 전화를 자주 해왔고, 학생은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진료시간을 훌쩍 넘겨 통원치료를 하곤 했다.

필자는 의사의 길을 걷기까지 아버지의 가르침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필자는 땅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시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끔 아버지의 자전거 뒤편에 앉어서 논을 지날 때면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다.

"영근아, 금보다 쌀이 더 중요하니라. 금은 없어도 살지만 쌀은 없으면 못 살아."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네"하고 씩씩하게 잘도 대답했었다.

농사를 짓는 농가에서는 쌀은 무엇보다 귀중한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땀을 흘려 수확한 쌀이 금보다 더 값진 것임을 자식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자식들이 가난한 살림살이 때문에 자칫 황금만을 좇는 삶을 살까 걱정이 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덕분에 늘 창고에 쌀이 가득한 우리 집이 부자라고 생각하며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의대를 진학하고 수부전문의가 되기까지 어릴 적 부모님의 가르침은 어두운 밤길에 빛나는 별과 같았다.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에 육체의 수고로움은 꼭 필요한 것이다.'

첫 조카와 고교생 환자, 앞으로 어떤 길을 걷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053)550-5000 trueyklee@yahoo.co.kr

이 영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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