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사법 개혁

조선시대 대표적 사법(司法)기관은 형조와 사헌부, 한성부, 의금부 등으로 사안의 성격이나 대상자 등에 따라 관할이 나뉘었다. 이들 기관의 책임자 격인 당상관(堂上官)은 법사당상(法司堂上)이라는 칭호로 각별히 높여 불렀다. 국가 질서, 백성의 신고(辛苦)와 직결된 법을 다루는 기관인 만큼 권위가 높은 건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 기관의 권위를 지킨 건 당상관 아래 실무자들이었다.

대법원 기능을 가졌던 형조의 경우 판서'참판'참의가 각 1명이고 그 아래 정랑과 좌랑이 각각 4명씩 있었다. 정랑은 정5품이었지만 형조의 공사에 두루 참여해 조정에서 의견을 개진하고 관련 부서의 의견을 수렴하는 중요한 일을 맡았다. 무엇보다 당하관 가운데는 드물게 왕을 직접 면대해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직책이라는 점에서 부러움을 샀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몸가짐을 바로 하는 데 충실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헌부는 검찰 격이었지만 백성들로부터 받는 신망은 다른 사법기관에 비해 훨씬 컸다. 내부 규율부터 엄해 하루라도 먼저 부임한 선배가 출퇴근할 때는 후배들이 모두 일어서서 예를 표할 정도였다. 하지만 상소를 판단하고 탄핵을 주관하는 대관들의 칼날에는 선후배가 없었다. 명종 때 대사헌인 송기수는 즉시 탄핵해야 할 상소를 보고도 머뭇거렸다는 이유로 대관들에게 탄핵받기도 했다.

국회가 정치'사회적 사건에 대한 최근의 법원 판결과 검찰의 묵은 수사관행 등을 이유로 사법 개혁을 외치고 나섰다. 국민들로서는 위세 높은 법원과 검찰을 개혁한다는 말만으로도 기대가 생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개혁의 칼을 꺼낸 국회의 의도가 자못 수상하거니와 한나라당이 법원 개혁에, 민주당이 검찰 개혁에 정조준한 사실도 마뜩잖다.

한나라당이 법원 개혁의 일성으로 현재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인 대법관 수를 늘리고 구성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내놓은 점 또한 국민들의 바람과 거리가 있다. 일본 최고 재판관이 14명이고, 미국 연방대법관이 9명인 점만 봐도 사법 개혁의 구호 뒤에 정치적 이해타산이 숨은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세종실록에는 "대관에 임명되면 의금부 옥졸들이 '오늘은 사헌부에 있지만 내일은 반드시 하옥돼 우리의 제재를 받으리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고위 대신은 물론 왕족과 국왕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오로지 국가와 백성을 위해 법을 집행한 옛 사법의 정신이 그립다.

김재경 특집팀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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