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녹색지대 사람들] 장하빈 시인

'다락헌' 이름 짓고 시음악회'문학캠프 열어

장하빈(53) 시인은 2년 전 팔공산으로 떠밀리다시피 밀려왔다. 하지만 이 자리가 참 아늑하고 따뜻하다. 밖에는 삭풍이 몰아치고 있지만 시인의 방은 지구별에서 가장 알맞은 온도로 데워져 있다. 시인은 마당에 공작단풍나무 한 그루 심어놓고 그 아래서 차 한잔 마신다.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그 나무 아래서, 시인은 행복하다.

장 시인의 삶에 옹이진 상처는 빛나는 시가 되었다. 1997년 등단한 그는 지금까지 단 한권의 시집 '비, 혹은 얼룩말'을 냈다. 첫사랑인 아들을 잃었던 아픔을 기록한 시집이다. 그의 맏아들은 1991년 근무력증이 발병, 2002년 스무살에 시인 곁을 떠났다.

그는 시에서 초저녁 서쪽하늘에 잠깐 떴다가 지는 별인 개밥바라기로 아들을 은유했다. '어두운 강물 속으로 사라져간 개밥바라기' 말이다.

대학시절부터 시를 써왔던 그지만 아픈 아들을 지켜보며 '문학은 사치'라고 생각해 한때 절필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학이 아니면 자신을 일으켜 세울 힘이 어디에도 없었다. 다시 펜을 잡은 이유다.

그 후 자신도 위 절제수술을 받아야 했다. 여러 가지 상처로 지친 상태였다. 그러다가 2년 전 가벼운 폐렴으로 일주일 병원신세를 진 적이 있다.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를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아파트가 꼴도 보기 싫더란다. 그는 '몸이 하는 말'에 귀기울였다. 도시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팔공산 능선동에 보따리를 풀었다. 28년간 근무한 교직도 버렸다.

팔공산 동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능선동은 소나무가 성처럼 마을을 에워싸고 있다. 비오는 날엔 안개 속에 잠겨 마치 섬같다. 그는 '다락을 가져보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다. 삶은 그에게 소원을 들어주었다. 우연찮게 구한 집에는 다락이 두 개나 있다. 그는 집을 '다락헌'(多樂軒)이라 이름 짓고 명마산 너머로 노을이 지는 다락을 서편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방은 동편제라 부른다. 다락을 사랑해 스스로를 '다락방 시인'이라고 칭한다.

자연 속에서 그는 이제 한결 가벼워졌다.

"전원생활 자랑 좀 해도 될까요?"라며, 묻지 않아도 숨길 수 없는 웃음이 배어난다.

"마당에서 잡풀 뽑는 것도 재미있고 울타리를 손질하고 텃밭 가꾸는 것도 좋아요. 아궁이에 낙엽 태우기, 탱자를 말려 탱자차를 만드는 것도 즐겁죠. 가장 재미있는 것은 정원에 물 주는 일이예요. 사실은 마당에서 해바라기 하고만 있어도 즐거운 것이 시골 생활이죠."

차 마실 곳이 많아 다락, 정자, 마당, 나무 밑을 옮겨다니며 차를 마시기도 한다.

다락헌에서 그는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송앤포엠' 시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비슬령 문학캠프, 경명여고 청소년문학캠프도 연다.

지금까지 시인이 살아오면서 스스로 가장 잘 했다 싶은 일은 '시 쓰는 것'과 '팔공산으로 이사온 일'이라고 한다.

시인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자식 잃은 '얼룩말 시대', 위를 절제한 '밥통 시대', 자연으로 돌아온 '다락헌 시대'로 나눈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시인은 다락헌에서 스치는 자잘한 풍경들을 시로 기록한다. 요즘은 고스톱 치는 것보다 시 쓰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오늘 까치가 날아와 유리창에 날개 부딪히고 갔다. 우리집 창 안에 환히 들이비친 감나무 앉으려다 꺅! 비명 스처간, 저 또렷한 날개자국.(중략)내 어찌 모를까? 그리움으로 눈먼 저 새가 집을 잘못 찾아온 게 아니라 아, 이 몹쓸 것이 허락도 구하지 않고 숲속 영토 버젓이 차지해 사는 것을. 한데 또 어쩌랴! 옛 둥지 날아든 저 새가 유리창에 쿡, 몸도장을 찍어 팔공산 한 귀퉁이 깃들인 내 생의 진경 산수화 미리 완성해내는 것을.

-낙관-다락헌 시편1.'

내년쯤에는 밥통 시편과 다락헌 시편을 따로 묶어 시집을 내려 한다. 그의 첫 시집 '비, 혹은 얼룩말(만인사 펴냄)'은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고인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뒤늦게 인기몰이를 해, 작년에 2쇄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 시 '첫사랑'을 옮겨본다.

천등산 끝자락에서

가서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린다

박하 향기 아득한 시간의 터널 지나

푸른 기적 달고 숨가삐 달려 와서

내 생의 한복판 관통해 간

스무 살의 아름다운 기차여!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