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암살

조선 정조 7년 20명의 암살단이 칼을 들고 궁궐의 담을 넘었다. 정조가 머무는 경희궁 지붕까지 올라갔던 암살단은 호위 무사에게 발각돼 도주했다. 그들은 다음 달 다시 궁궐 담을 넘다 체포됐다. 조선 왕에 대한 암살 기도가 이전에 없었던 건 아니지만 대담하게도 암살단이 궁궐까지 숨어든 사건은 처음이었다.

암살의 배경은 당쟁이었고, 근원은 전전대 왕인 경종의 죽음이었다. 소론을 등에 업었던 경종은 동생 연잉군을 앞세운 노론 세력을 신축환국과 임인옥사를 통해 축출하는 데 성공했으나 세제(世弟)였던 연잉군을 폐위하는 일은 끝내 실행하지 못했다. 병석에 누운 경종은 어의들의 반발을 누르면서까지 게장과 생감, 인삼으로 기를 회복하라는 연잉군의 말을 따르다 먹은 그날 밤 죽고 말았다. 그렇게 즉위한 연잉군이 영조다.

영조 즉위 후 그를 경종의 독살범으로 의심한 소론 세력들이 줄줄이 죽어나갔다. 영조 4년 난을 일으킨 이인좌의 부대는 군중에 경종의 위패를 설치해 놓고 날마다 곡을 했다. 영조 31년 나주 객사에 영조의 치세를 비방한 벽서를 붙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죽임을 당한 신치운은 국문장에서 "나는 선왕이 붕어한 해부터 게장을 먹지 않는다"며 독살 의심을 떨치지 않았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건 이런 소론을 옹호한 데서 연유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자 위기를 느낀 노론 세력 일부가 암살단을 만들어 궁궐 담을 넘게 했으니, 정조 암살 시도는 결국 경종의 죽음에서 시작된 셈이다.

역사적으로 암살은 명분이 부족하거나 명분을 강행할 힘이 부족할 때 흔히 사용되는 수법이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지난달 두바이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하마스 간부 알 마부 암살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그들은 '미션 임파서블'이나 '본' 시리즈 같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완전범죄를 기도했지만 꼬리는 떨쳐내지 못한 듯하다. 모사드가 수십 년 동안 이슬람 무장 세력들을 상대로 테러와 암살, 보복과 보복으로 이어지는 피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세계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암살 실패로 국제적인 비난을 산 경우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들은 암살을 멈추지 않는다. 우려되는 건 21세기 문명의 충돌이 거기서 비롯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김재경 특집팀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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