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홈쇼핑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이성은 멈춰버리기 십상이다. 자신도 모르게 이성보다는 감성이, 절제보다는 욕망이 앞서고 있음을 실감한다. 한 조사에서 소비자 10명 중 9명(87.4%)이 TV홈쇼핑 프로그램을 보다 충동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을 만큼 유혹이 강하다. TV홈쇼핑이 마케팅의 총아로 불리는 이유다. 짧게는 몇 초 안에, 길어야 1, 2분 안에 시청자를 매료시켜야 하는 생존법칙 때문에 홈쇼핑 프로그램에는 각종 판매전략이 녹아 있다. 쇼호스트의 한 마디, 장면 하나, 디스플레이 하나까지도 시청자가 전화기를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시청자들에게 '지름신'(비싸거나 불필요한 소비까지 부추기는 권능을 가진 신이라는 뜻의 유행어)이 내리게 만드는 홈쇼핑의 전략을 알아봤다. 예고 없이 강림하는 지름신 때문에 후회해본 경험이 있다면 반드시 새겨봐야 할 내용이다.
◆ 공짜심리를 파고들어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공짜를 좋아한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고 하지만 공짜에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같은 심리를 철저하게 파고든 것이 '미끼 전략'이다. 팔고자 하는 물품에 작은 미끼를 하나 더 던져주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 같은 판매가 너무 흔해 소비자들은 좀 더 크고 많은 것을 바란다. 웬만한 샘플로는 소비자들이 마음을 잘 주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보고'(BOGO'Buy One Get One) 마케팅이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주는 것으로 이른바 '1+1' 전략이다. 이 전략은 홈쇼핑뿐 아니라 대형소매점 등에서도 이제 기본적으로 사용된다.
홈쇼핑의 주고객은 예나 지금이나 30, 40대 주부들이다. GS숍 관계자는 "30, 40대 주부들이 전체 고객의 70~80%에 이른다"고 말했다. 주부들은 돈이 많든 적든 기본적으로 알뜰하다. 이 때문에 1+1 전략은 의외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다. 주부 한주선(37'대구 수성구 범어동) 씨는 "홈쇼핑뿐 아니라 대형소매점에 가서도 1+1이 찍혀 있는 물건에는 자연스레 눈길이 가서 그리 급하지 않아도 종종 구입한다"고 했다. 쇼호스트들이 "바지 한 벌 가격에 두 벌을 드립니다"라거나 "화장품 한 개 가격에 리필용 제품을 한 개 더 드립니다"라고 계속해서 떠드는 것도 이 같은 전략에 따른 것이다.
◆ 마감'선착순 등 한정판매로 협박(?)
홈쇼핑 업체라고 소비자들에게 공짜 마케팅만 할 수 없다. 이것을 보완해주는 것이 바로 한정판매 마케팅이다. 쇼호스트들이 자주 강조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지금부터 딱 10분 동안만 주문을 받습니다" "앞으로 100분만 더 모시겠습니다"라는 것이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 가격에 동일한 제품을 만날 수 없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백화점 세일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일 마지막 날에는 백화점 주변으로 하루종일 교통체증이 일어난다. 이는 소비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다 사는데 나도 지금 뭔가 사 두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일종의 불안 심리를 갖기 때문이다.
홈쇼핑은 이 같은 심리를 최대한 활용한다. 쇼호스트들이 다시는 이 가격으로 이 상품을 만날 수 없다고 강조하는 순간 화면 한쪽에는 시시각각 올라가는 전화 주문량과 떨어지는 재고 잔여분이 타이머와 함께 표시된다. 마감시간과 선착순 입찰, 한 가지도 아닌 두 가지 데드라인을 들이대며 소비자의 결단을 다그친다. 홈쇼핑 업계에 따르면 쇼호스트가 긴박한 멘트를 날릴 때마다 매출이 20~30% 정도 올라간다고 한다.
◆ '9'로 끝나는 단수가격, 싸게 느껴져
홈쇼핑 애청자인 주부 김주영(33'대구 달서구 용산동) 씨는 "홈쇼핑에 소개되는 물건들의 값은 끝자리가 딱 떨어지는 것이 거의 없다. 꼭 몇백원이나 몇십원을 붙인다"고 말했다. 상품의 판매가격에 구태여 단수를 붙이는 것을 '단수가격' 마케팅이라 한다. 이는 시각적으로 싸게 보여 소비자들의 수용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1만원 하는 샴푸를 9천900원에 판매하면 그 차이는 겨우 100원이지만 소비자들은 훨씬 싸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종의 심리적 가치 설정인 셈이다.
단수에는 짝수보다 홀수가 많이 쓰인다. 특히 9로 끝나는 숫자가 많다. 언뜻 보기에는 끝자리가 너저분해 보이지만 이것저것 세밀하게 계산된 가격이라는 느낌을 주고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줘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좋다. 단수가격은 소비자들의 가격저항선을 극복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소비자들이 보통 5만원, 10만원 등과 같은 단위를 정해 그 이상의 가격이라면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가격저항선을 만드는데, 단수가격은 그런 저항선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수가격은 무이자 할부에도 많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10만원짜리 제품을 팔 때 일시불로 구입하라고 하는 것보다 9천900원씩 10개월 무이자 할부로 구입하라고 하면 더욱 판매량을 늘릴 수 있다. 최근에는 9라는 숫자가 너무 남용돼 상업적인 이미지를 많이 준다고 해서 일부에서는 8을 활용하기도 한다.
◆ 오전 동안 주부 관련 상품 등 시간대별로
홈쇼핑 프로그램 편성에도 일정한 법칙이 있다. TV프로그램 편성처럼 시간대별로 공략하는 고객층이 다르다. 주 타깃은 여성이지만 연령대별로 제품 종류를 달리한다. 소비자들의 라이프 사이클을 최대한 고려한 것이다.
우선 이른 아침시간인 오전 6~8시에는 홍삼이나 오메가, 혈압계, 안마의자 등 주로 중장년층이 관심을 많이 갖는 건강 관련 제품을 방송한다. 아침잠이 적고 자녀를 다 키워 이 시간대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40대 후반 이상의 연령층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오전 8시부터 정오까지는 20, 30대 젊은 주부들을 위한 상품이 집중적으로 배치된다. 언더웨어나 화장품, 어린이용 도서나 상품 등이 등장하는 것이다. 주부들이 남편과 자녀를 회사와 학교에 보내고 한숨 돌리는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화장품이나 의류 등이 주로 편성된다.
오후 5시부터 저녁식사 시간까지는 갈비, 간고등어 등 식품류가 많이 소개된다. 저녁식사 전에 배가 고픈 소비자들을 의식해서다. 가족이 모여 TV를 시청하는 오후 8시 이후에는 주로 전자제품이 등장한다. TV나 냉장고, 오븐 등 100만원을 넘나드는 상품들이 배치된다. 고가의 전자제품은 주부 혼자서 구매를 결정하기보다 부부 혹은 가족 전체가 상의한 뒤 구매하기 때문이다. 심야 시간에는 노트북이나 디지털카메라, PMP 등이 많이 등장한다. 대학생이나 젊은 직장인, 미혼여성 등 늦게 잠자리에 드는 20대와 30대 초반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다.
◆ 지상파와 연계…월드컵 시즌 연장 방송도
홈쇼핑은 지상파방송 프로그램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지상파방송에서 어떻게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어떤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지에 따라 홈쇼핑 편성도 달라진다. 지상파 프로그램에 따라 특집이나 연장 방송도 수시로 한다. 이른바 지상파에 얹혀 사는 형태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월드컵 중계방송이었다. 중계방송이 오전 3시 30분에 진행되는 걸 노린 홈쇼핑업체들은 특별 연장 방송을 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일반적으로 홈쇼핑은 오전 2시에 생방송을 끝내고 오전 6시까지 기존 녹화분을 방송한다. 하지만 이날은 새벽에 TV 시청자가 많아질 것에 대비해 연장 생방송을 했던 것. 홈쇼핑 대표주자인 GS숍과 CJ오쇼핑 등은 이날 평소보다 1시간 늦은 오전 3시까지 생방송을 연장했다. 품목은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는 20, 30대를 공략하기 위해 디지털 상품을 전략적으로 편성했다. CJ오쇼핑 관계자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거대 이슈가 있을 때는 심야에 TV 시청자가 급격히 늘기 때문에 그때 그때 맞춰 특별 방송을 준비한다"고 했다.
드라마와 맞물리는 편성도 자주 한다. 지상파에서 드라마 전후로 광고를 보여줄 때를 이용해 그 시간대에 물품 설명을 끝내고 전화를 하도록 만드는 등 여러 가지 연계방송도 하고 있다.
♣충동구매 하지 않는 계획구매 요령
▶홈쇼핑 카탈로그를 신청하자. 카탈로그를 통해 상품의 전반적인 가격을 체크할 수 있고 신상품은 미리 눈여겨볼 수 있어 쇼핑 센스를 키울 수 있다.
▶구매하고자 하는 상품을 휴대폰 번호와 함께 해당 홈쇼핑 인터넷 홈페이지에 등록해 두면 방송 1시간 전에 문자메시지로 안내하는 '폰알리미' 서비스를 신청하자.
▶상품 편성표를 미리 확인하자. 해당 홈쇼핑 인터넷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향후 2주간의 상품 편성표를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자신이 관심 있는 상품 방송만 보는 습관을 기르자.
▶충동구매가 너무 심하다면 홈쇼핑 채널을 보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리모컨을 이용해 홈쇼핑 채널을 시청채널에서 아예 없애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