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응원할 때 흔히 쓰는 3·3·7 박수가 일제 잔재라는 거 모르셨지요? 학교 현장에는 우리도 모르는 새 쓰이고 있는 일본식 용어나 구습(舊習)이 참 많아요."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경북대 국문과 교수·대구시교육의원)은 일제의 잔재들이 아직도 학교 현장에 많다며, 3·3·7 박수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우리 민족의 기본적인 음률은 3박자나 4박자이지만, 문자에 받침이 없는 일본의 경우는 6박자나 7박자로 음률이 긴 게 대부분이라는 것. 그는 "이런 일본 잔재들이 우리 의식 속에 자연스러운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며 "학교에서부터 하나씩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학교 현장에 남아있는 일본식 용어와 구습들을 청산해야 한다는 교육계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학생, 교사들이 흔히 쓰는 일본식 용어나 제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일본식 이름(태랑·太郞)까지 가졌었다는 황종태(73·대구 삼락회 회장) 전 달성고 교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2002년 퇴임한 황 전 교장은 현재 상서여자정보고등학교에서 배움터 지킴이로 활동 중이다.
그는 교육 현장에 남은 대표적 일본 잔재로 '유치원'(幼稚園)을 지목했다. 유치원은 구한말 일본이 부산에 체류하고 있던 일본인의 유아기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한 기관을 유치원이라고 이름 지은 데서 유래했다. 독일식 유치원 표기인 'Kindergarten'(어린이들의 정원)을 일본식 조어 방식에 맞게 '유치원'으로 사용한 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 지난해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이 유치원의 명칭을 '유아학교'로 바꾸는 내용의 유아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으나 아직까지 국회에서 심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흔히 쓰이는 '훈화'라는 용어도 일제 치하의 권위주의적 색채가 강한 표현이다. '교훈의 말'이라는 의미이지만 상관이 부하에게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 강하다. 황 전 교장은 "'학교장 말씀' 또는 '선생님 말씀'으로 고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졸업식 때 학교장이 하는 '회고사'(誨告辭)도 가르치고 권고하는 말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정작 국어사전에는 이런 표현이 없다는 것.
학년 말이 되면 학생들의 졸업 여부를 결정하는 '사정회'(査定會)가 종종 열리는데, 이 또한 일제식 표현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학년 말에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지의 여부와 학업 성적을 조사해 진급과 유급을 결정했기 때문. '학년말 평가회' 정도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운동장에 전교생을 모아놓고 진행하는 아침조례나 교문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의 두발·복장을 검사하는 것, 수업 전 교사에게 '차렷, 선생님께 경례' 하는 인사 등이 일본 군국주의의 대표적인 잔재입니다. 없어져야 할 구습이지요."
황 전 교장은 일제의 권위주의적 관습이 교사, 학부모, 학생들에게 그릇된 의식을 심어준 예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생님을 부모보다 높은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 역시 일본식 권위주의의 소산"이라며 "부모들이 아이한테 '선생님한테 이른다'는 식으로 겁을 주는 말을 하는 이면에는 이런 잔재가 있다. 칼을 찬 무서운 사람들로 교사를 생각하는 것으로 존경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학교장이 절대적 권한을 가진 관리자로 인식되고 있는 것 역시 권위주의적 잔재다. 황 전 교장은 "학교장은 일반 교사들을 위한 조력자이며, 총괄 관리자라는 하나의 역할에 불과할 뿐"이라며 "학교장과 평교사, 학생의 관계가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대화하고 협력하는 수평적 관계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12일 성명을 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세대를 키우는 교육 현장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총은 학생들의 역사의식 고취를 위해 '우리역사교육연구회'와 공동으로 전국 초·중·고교에서 지난달 12~16일 '경술국치 바로 알기 특별수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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