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의 재위 기간은 당쟁이 가장 극심했던 시절이었다. 죽느냐 사느냐 끝장을 보는 싸움의 소용돌이에서 권력층의 관심은 자신들의 부귀영화가 먼저였다. 주권자 임금은 물론 백성의 고단한 삶은 그 다음 순서였다. 숙종은 조선 국왕 중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임금이었다. 수시로 집권 정권을 교체시키는 환국 정치로 왕권을 지켰다. 권력이 집중된 남인에 대해 숙종은 견제할 필요를 느꼈다.
남인의 영수이자 영의정이던 허적의 집에서 잔치가 열렸다. 그날 비가 오자 숙종은 궁중의 용봉차일(기름을 칠하여 물이 새지 않도록 만든 천막)을 보내려 했다. 그러나 이미 허적이 가져간 뒤였다. 허적의 집에 남인들이 모두 모여 있다는 보고를 들은 숙종은 대로했고 조정의 요직은 서인으로 교체됐다. 허적은 얼마 후 아들의 역모 사건에 휘말려 목숨까지 잃고 만다. 집권 남인들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던 주권자 임금에게 기름막 사건이 불을 지른 것이다. 국왕의 소유물을 제 것인 양 마음대로 쓴 것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분명 불공정한 관행이었다.
외교통상부 장관이 딸의 특채와 관련, 사의를 표명했다. 특채 과정에 대한 감사와 무관하게 아버지가 딸의 채용을 결정한 행위는 일단 공정하지 못한 처사라는 여론이 드높다. 이명박 대통령도 '오래된 관습이라 통과될 수 있는 문제인지도 모르지만 공정한 사회를 기준으로 보면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특혜를 당연시 여기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딸의 능력이 우수한데도 아버지가 장관이라고 안 된다면 이 또한 역차별이라는 항변도 나온다. 그러나 공직자는 개인의 이익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할 자리가 아닌가. IMF 위기로 해고 사태가 빚어졌을 당시 부모가 일자리가 있다는 이유로 젊은 아들을 해고한 회사도 있었다. 힘없는 서민 아버지는 아들의 실직을 막기 위해 사표를 던졌다.
사회 지도층에 대한 국민의 염증은 적잖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고위 공직자의 자세로 마부위침(磨斧爲針)을 강조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자세를 부탁한 주문이다. 열심히 일하라는 말인 동시에 공직자로서의 초심을 잃지 말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집권 지도층의 거듭된 일탈은 왕조 시대 주권자 임금이 한 것처럼 주권자 국민이 버릴지도 모른다.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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