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 민족주의 길들이기 /장문석 /지식의 풍경

민족주의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법

"당신에게 민족은 무엇입니까?"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민족이란 말이 담고 있는 수많은 의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버려야 할까? 독도문제, 일본의 식민지 지배 합리화 발언,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 등 우리의 민족감정을 자극하고, 잠재되어 있는 민족의식을 표출시킬 만한 사안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럴 때 우리의 민족 감정은 끓어오른다. 하지만 국제화'세계화시대에 민족주의란 케케묵은 이념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민족주의란 이름으로 약자에게 저지르는 억압과 횡포가 적지 않음을, 우리가 그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것을 가까이서 여러 차례 목격하기도 했다.

장문석의 『민족주의 길들이기』를 읽었다. 저자는 대학에서 '민족주의의 역사'를 강의하면서 민족주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는 입문서가 없음을 느끼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책을 쓰면서 저자는 민족주의를 둘러싼 오랜 논쟁과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종족'과 '민족'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 종족과 민족의 연속성을 강조하느냐, 아니면 불연속성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민족주의에 대한 해석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민족의 종족적 뿌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보면 민족주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자생적인 현상인 반면에 종족과 민족의 근원적인 차이를 지적하는 입장에서 보면 민족주의는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지닌 근대적인 현상인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입장 사이에서 저자는 종족과 민족이 서로 동일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서로 무관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양자를 리모델링의 관계로 파악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 민족은 종족을 철거한 다음에 재건축되는 것이 아니라 종족의 기본 골조를 유지하면서 리모델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리모델링에서 중요한 점은 혁신이 기성 건물을 보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분히 절충적인 방식으로 종족이 리모델링되어 민족이 된다고 보면, 민족에는 전근대시대의 종족에 담긴 문화적 논리와 근대국가의 시민에 담긴 정치적 논리가 함께 존재하는 셈이다.

1장에서는 민족주의의 개념과 이론을 소개하여 민족주의 연구사를 정리했다. 특히, 민족주의의 이론을 원초론, 영속론, 근대론, 탈근대론, 상징론 등 총 5가지의 패러다임으로 분류하였는데, 이는 저명한 민족주의 연구자 앤소니 D. 스미스의 분류법을 약간 변형한 것이라고 한다. 나머지 장들은 모두 민족주의로 읽는 유럽의 역사에 해당하는데, 관습에 따라 19세기 초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완연하게 등장한 민족주의를 기준점으로 삼아 민족주의 이전과 이후의 종족과 민족을 다루었다.

종교가 광신을 낳듯이 민족주의도 광신을 낳기 쉬운데, 온갖 형태의 국수주의, 파시즘, 제국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민족주의적 광신은 다른 민족을 '오랑캐'로 여기면서 자민족의 우월성을 배타적으로 내세우는 편향이다. 20세기의 마지막은 그런 광신적인 자민족 중심주의가 낳은 폐해들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서양 중심주의를 극복한다고 하면서 그와 같은 자민족 중심주의로 빠지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민족주의가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을 인정하되, 민족주의가 광신으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관리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민족주의 길들이기'의 전제로서 민족주의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역사학자 베넥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불렀다. 임지현은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라는 도발적인 책을 써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 안의 민족주의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성숙한 세계 시민주의 의식으로 민족주의를 포용하고 길들이는 법은 무엇일까. 우리의 성찰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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