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전시회를 다녀와서

내가 하는 일 때문에 미술관이나 화랑을 자주 찾는다. 특히 미술계 사람들이 '오프닝'이라고 부르는 첫날 저녁 행사에 가야 될 일이 많다. 그런 곳에 갔다 온 다음날 출근을 하면 내가 일하는 곳의 갤러리 큐레이터들은 '어제 오프닝은 사람이 많아서 작품 감상을 못했는데, 조용할 때 한 번 더 가지요'라고 말하곤 한다. 과연 '프로'다운 말이다. 그런데 나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한다. 그럴 필요까진 없다는 생각이다.

아주 크고 넓은 규모의 전시 행사가 아니라면 미술작품을 보는 일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들지 않는다. 미술에서 한 작가가 펼치는 온전한 장(場)이 개인전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음악에서 한 장의 앨범, 문학가들에게 책 한 권과 같은 감상 단위일 것이다. CD 한 장을 듣는 시간, 책 한 권을 읽는 인내력에 비하면 전시 공간을 둘러보는 일은 훨씬 수월하다.

그래서일까, 많은 작가들은 자신의 전시 개막식에 손님들이 붐비는 것을 반긴다. 나는 작가가 아니지만 그런 심정이 이해된다. 음악가나 무용가는 무대에서 청중과 관객의 이목을 받는다. 그들은 하나의 작품으로 여러 번 무대에 오르고, 그때마다 박수갈채를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술가들은 그와 같은 의사소통을 관객과 할 수 없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개막 행사가 미술 감상에 있어 완벽한 환경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이, 관객이 없는 조용한 전시장에 가는 것도 마냥 쉽지는 않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부터 돌아봐야 될지 왼쪽부터 봐야 할지 우리는 거기서부터 멈칫거린다. 현대미술이란 게 다들 눈을 감고 그린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안내 책자를 보려니 그게 공짜인지 값을 치르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집어들고 펼쳐보니 차라리 그냥 그림만 보는 게 낫겠다. 비평문은 작품보다 더 어렵고 제 잘난 체한다. 큐레이터가 설명해주면 좋은데 쌀쌀맞아 보여 부르기가 부담스럽다.

미술도 아트(art), 예술도 아트, 예술 가운데 첫째가 미술이라는데 감동을 느끼는 건 왜 이렇게 힘들까. 노래 한 소절, 영화 한 장면에서 우리는 가슴 찡한 무엇을 느끼는데 말이다. 분명한 사실인데, 미술에서도 격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하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올 초 영천의 한 미술관에서 열렸던 한국화가 김호득의 전시회를 보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창작에 대한 작가의 열정을 사전에 알기에 가능했겠지만 그곳이 매우 어두운 장소였기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체험으로서의 미술 감상, 빛이 있어야 작품도 존재할 수 있는 시각 예술에서 그것은 일종의 역설(paradox)이다.

윤규홍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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