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긴급조치

젊은이는 두서너 명만 모여도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목소리를 죽였다. 막걸리라도 한잔 걸치고 풀어져 호기를 부리는 친구가 있으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를 달래야 했다. 3대 세습에 따른 내환(內患)을 연평도 포격이란 외우(外憂)로 돌파하려는 북쪽 '겨울 공화국'의 얘기가 아니다. 1970년대 제4공화국 시절 우리의 삶이었다.

왜 그래야 했느냐고? 자칫 입을 잘못 놀렸다간 소리 소문도 없이 잡혀가야 했기 때문이다. 법보다 더 무시무시했고 최상위법인 헌법조차 명함을 내밀지 못한 이른바 '긴급조치'라는 것이다. 법 위에 군림한 이 '무소불위의 조치'는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질서를 위하여 국민의 기본권까지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주었다.

3선 개헌을 통해 당선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영구 집권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다시 헌법 개정에 나섰고, '한국적 민주주의'를 한다며 국회를 폐쇄하고 이른바 '10월 유신'을 통해 유신헌법을 만들었다. 1972년 12월 공포'발효된 유신헌법(제4공화국헌법)에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이란 조항(제53조)이 있었다.

'대통령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는 내정'외교'국방'경제'재정'사법 등 국정 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를 통해 대통령은 입법'사법'행정 3권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됐다. 사대부들의 견제를 받았던 조선왕조의 왕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헌법 조항 하나가 보장한 셈이다.

대법원이 1974년 선포된 대통령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유신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행위,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행위를 금했다. 이를 위반하거나 비방하는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비상 군법회의에서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긴급조치는 제9호까지 선포됐다.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에게 긴급조치 제10호를 내릴 권한을 준다면 철퇴를 받을 대상이 적지 않을 게다. 혹시 떨고 있는 사람은 없는가.

조영창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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