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 2011년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토끼처럼 깡충깡충 도약한다.'
1인당 지역 총생산량(GRDP) 18년 동안 16개 시도 중 전국 꼴찌, 근로자 임금 전국 최저 수준, 신차판매율 전국 최저 수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대구가 받아든 성적표는 불편하기만 하다. 그러나 다가오는 새해에는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내년 8월 27일 대구에서 열리는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다. 이 대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된다.
전 세계 212개국 이상이 참여하며 세계 인구의 65억 명 이상이 실황중계를 본다. 대구를 세계 속에 알리고 발전의 전기로 만들 수 있는 기회임이 분명하다. 대회준비도 차질없이 진행 중이다. 이달 17일에는 주경기장인 대구스타디움에서 트랙준공식이 열렸고 20일에는 메달디자인도 공개됐다. 23일 전 대구시장에서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장으로 대회를 총지휘하고 있는 조해녕(76·사진) 위원장을 만나 세계선수권의 의미와 준비상황을 들었다.
◆유치 자체가 기적
집무실에 들어서자 백발의 노신사가 환한 웃음으로 맞는다. 눈이 내린 듯 새하얀 머리카락 때문인지 꽤 쌀쌀한 날씨임에도 집무실은 따뜻한 온기가 넘쳤다. 관선과 민선 대구시장을 모두 지낸 유일한 인물, 두 번에 걸쳐 장관을 역임한 조 위원장. 화려한 경력에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워보였다. 그러나 '오프 더 레코드'를 전재하고 털어놓는 얘기가 꽤 많았다. 유치에 성공하고 난 다음 무용담이 되어 버린 이야기들도 쏟아져 나왔다.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07년 3월 27일부터 시작됐다. 아프리카 케냐 몸바사에서 열린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지 결정 이사회에서 대구가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한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월드컵, 하계 올림픽과 더불어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개최하는 엄청난 일을 이룩하게 됐다. 대한민국이 명실공히 세계 스포츠 강국 G7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조 위원장은 스스로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인연이 참 깊다고 소개했다. "대구시장으로 재직 당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를 추진했고, 시장을 그만둔 뒤에도 대구 유치를 위해 뛰었고, 결국 대구유치를 이끌어냈고 지금은 현 시장과 함께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요."
이야기가 무르익자 조금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 보았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유치 과정에서의 무용담 중 하나로 '집행위원들을 술, 여자 등으로 구워 삶았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고 전했다.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유치 자체가 워낙 기적에 가까워서 그런 얘기들이 오가는 것 같습니다. 대회 유치는 당시 비우호적인 정권하에서 대구 혼자 외롭게 고군분투해 이뤄낸 성과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호주 외에 러시아 모스크바가 대회 유치 신청을 했고 육상의 불모지인 대구로서는 유치 과정이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형 클린 로비를 전개했고 대회 유치에 대한 열의와 노력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던 집행위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지요."
◆대구, 세계육상의 메카로
연말연시, 각종 모임에서 그가 공·사석을 가리지 않고 외치는 건배사가 있다. 바로 '쓰자 50억'. 육상 꿈나무를 키우기 위해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게 되면 포상금 10억원, 코치진에게 5억원을 준다는 말이다.
이렇게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데는 남다른 철학과 신념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참 대단한 나라입니다. 6·25를 겪으면서 세계 최하위 빈곤국이었지만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88올림픽 유치와 함께 종합 4위라는 전대미문의 기록도 달성했습니다. 또 2002 한·일 공동 월드컵 때는 4강의 기적을 이뤄냈지요.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뛰어난 육상선수가 없지만 제2의 김연아 박태환 선수들이 육상에서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문제는 비인기 종목인 육상을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육상 경시 풍조입니다. 처음에 육상 선수로 시작하더라도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야구 축구 등 인기종목의 스포츠에 프로로 가버리고, 더구나 육상은 프로라는 세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파격적인 포상금을 내걸어 육상 꿈나무를 키워보자는 뜻에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했습니다." 일단 육상 스타를 만들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 자연스레 스폰서도 생기고 기업들도 선수들을 키우게 된다는 논리다.
성공적인 대회 유치 못지않게 조 위원장이 신경 쓰는 것은 대구대회 이후 인프라의 활용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조성될 육상 붐을 육상진흥의 계기로 삼아 대구를 세계 육상의 메카로 만들어 갈 방안을 구상중입니다. 또 육상진흥센터를 활용해 국제실내육상대회 등 각종 대회를 유치하는 한편 육상 아카데미를 설립해 육상 꿈나무를 양성하는 방안도 추진중입니다."
◆시민이 함께 뛰는 세계육상선수권
육상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과연 세계적인 육상 이벤트 붐 조성이 가능하겠냐는 의문을 제기하자, 이런 답을 들려줬다. "이미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구시민의 70%가 세계선수권에서 한 경기 이상 관람하겠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풀(만석) 스타디움은 자신 있습니다. 다만 무엇이든 자주 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만큼 육상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간접 경험이나마 다양한 이벤트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조 위원장은 오히려 이제 목표는 관중 몰이를 넘어서 시민 대다수가 참여하는 대회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 조직위는 6천133명의 자원봉사자 모집을 완료했습니다. 이들은 통역과 의무도핑, 사무지원, 교통, 운전 등 총 11개 분야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현재 분야에 관계없이 안내 등 기본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자원봉사자 교육에도 심혈을 쏟고 있습니다. 213개 지역 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시민 서포터스의 조직도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대구에 대한 사랑과 애정도 잊지 않았다. "1인당 지역 총생산이 18년째 전국에서 꼴찌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소비수준은 3대 도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지요. 대구 경제의 침체가 사실보다 과장됐다는 증거입니다. 전혀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대기업이 없다는 콤플렉스를 벗어나 시대 흐름을 꿰뚫고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다행히 문화 콘텐츠 사업을 비롯해 테크노폴리스, 메디시티 사업 등 현재 대구시가 추진하고 있는 방향은 정확하다고 했다. 따라서 시민과 대구의 리더들이 힘을 모으면 과거 대구의 옛 명성을 회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했다. "모두가 조 위원장님이 대구시장 재직 중에 추진한 것 아닙니까?" 빙그레 웃을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조해녕은 누구?
행정의 달인이라 불리는 조해녕 조직위원장은 1943년 경산에서 태어나 1971년 10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들어선 이후 ▷대구시 기획관리실장(85년) ▷대구시장(93년) ▷총무처장관(96년) ▷내부무장관(97년) ▷2002~2006년 대구시장 등 주요 공직을 두루 거친 행정관료 출신이다. 조 위원장은 특히 운동에도 소질이 많아 서울대 재학중 수영 평영부문에서 한국최고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현재 김범일 대구시장과 함께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공동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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