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사물을 실물 크기로 그리고 싶다

'모든 사물들을 실물크기로 그리고 싶다 내 사랑은 언제나 그게 아니 된다 실물크기로 그리고 싶다 사랑하는 자정향(紫丁香) 한 그루를 한번도 실물크기로 그려낸 적이 없다 늘 넘치거나 모자라는 것이 내 솜씨다 오늘도 너를 실물크기로 해질녘까지 그렸다 어제는 넘쳤고 오늘은 모자랐다 그게 바로 실물이라고 실물들이 실물로 웃었다'.(정진규의 '자정향' 중에서)

모든 사물을 실물 크기로 그리고 싶다. 내 마음은 언제나 그게 안 된다. 자정향 한 그루도 실물 크기로 그려낸 적이 없다. 자정향의 크기는 마음의 크기다. 늘 넘치거나 모자라는 게 내 마음의 실체다. 어제는 넘치고 오늘은 모자란다. 지금 내 마음을 어쩌면 저리도 완벽하게 표현했을까?

라일락을 자정향으로 부른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안다는 거 참 무섭다. 알게 되니까 많은 것들이 내부에서 숨을 쉰다. 그렇구나. 자정향으로 부르니까 라일락이 저만치 사라진다. 라일락으로 부를 때는 그렇게 그 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정향이라 부르니까 그 꽃이 정말 좋다. 이런 생각은 나도 모르게 넘치는 생각을 만들어낸다. 막으면 열린 것이 부럽고 열리면 막힌 것이 부럽다. 그것이 삶이 지닌 본질이다.

최근에 누가 물었다. "도대체 그렇게 많은 일을 추진해 나가는 힘이 무엇이냐?"고. 사실 내가 하는 일은 혼자 하기에는 분명 벅차다. 내가 대답했다. "내가 지닌 가장 큰 힘은 어리석음이다. 내가 하도 어리석으니까 저 사람을 저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와준다. 그게 힘이라면 힘이다." 대답하고는 정말 진실에 가까운 절묘한 대답이라고 스스로 흐뭇했다.

그러니까 다시 말했다. "그게 그거잖아. 네 그릇이 정말 큰 모양이다." 나는 그릇이 큰 사람은 분명 아니다. 사소한 일에도 마음 아파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내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면 나는 하찮은 사람이다. 그 정도의 그릇에 불과할 게다. 내 그릇의 크기가 큰 것이 아니라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의 마음 크기가 큰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사실이다. 그 사람들이 모두 나를 떠난다면 나를 도와줄 또 다른 사람들을 찾아 나설 게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어리석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근무하는 건물 마당에는 봄이 가득하다. 몇 시간 정도는 그냥 이런 봄을 즐기고 싶은데 그것조차 쉽지 않다. 온갖 목소리들이 달려온다. '다른' 생각 정도라면 받아들이고 싶은데 분명 '틀린' 생각들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다. '다름'과 '틀림'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틀림'도 분명 그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는 '옳음'이라고 판단할 테니까.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반드시 '틀림'이 내재되어 있다. '틀림'은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고 방법이나 과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신의 철학에만 함몰되면 이미 대화와 타협, 배려는 저만치 밀려난다. 교육은 철학 자체이자 그 철학의 실천 방법이다. 오히려 후자가 더욱 의미를 지닐 때가 많다.

모든 사물들을 실물 크기로 그리기는 쉽지 않다. 사물은 내가 보는 각도에 따라, 내가 맡는 냄새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능하면 실물 크기로 그려내야만 하는 것이 교육이다. 실물은 교육정책을 만드는 사람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반드시 전제해야 하는 마음이다. 그 실물에 대해 판단하고 의미화하고 현실 안에서 실행하는 몫은 아이들의 몫이다.

사물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사물은 언제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스스로 아이들에게 말을 걸지도 않는다. 이른바 실물이다. 교육은 아이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바로 그 실물에 말을 걸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이 실물과 말을 하면서 실물은 변한다. 하지만 실물이 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있어서의 실물이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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