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일기] 상처 속에서 다시 배우는 사랑

사서교사로 발령받아 학교도서관을 맡아 온 지 어느덧 10년째. 초년병 시절 긴 생머리는 단발머리로 짧아졌고, 지금은 두 아이를 둔 '아줌마 선생님'이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부모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더 가슴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미숙함과 실수로 인해 한 아이와 부모님께 상처를 남긴 기억은 아직도 마음에 가시로 남아 있다.

사건은 작년 4월, 내가 맡고 있던 도서부에서 일어났다. 도서부는 학교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로 구성된 동아리이다. 학교에 있는 다른 봉사활동은 봉사 시간을 받기 위해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도서부에 지원한 아이들은 책이 좋고, 도서관이 좋아서 들어온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도서부원들은 다른 동아리와 달리 강한 소속감과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담임 선생님과 같은 심정으로 도서부원들을 다른 아이들보다 더 챙기고 아낀다.

문제는 도서부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투표를 통해 3학년에서 도서부장을 선출해온 것이 관례. 하지만 그 해에는 3학년이 단 세 명뿐이었고 그 중 2명은 3월에 갓 들어온 학생이어서 도서부 일을 맡기가 어려웠다. 나머지 한 아이는 1학년 때부터 도서부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유력한 도서부장 후보였지만, 2학년이 대다수인 부원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지도 교사로서 난감했다. 3월에 있어야 할 부장 선출을 유보하다가 4월이 되어서야 2학년도 부장 후보로 나올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도서부장 자격 기준을 2학년으로 확대한 것에 그 아이는 화가 났고, 학부모도 그 사실에 매우 분개했다. 미처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과 절차상 미숙했던 점이 마음에 걸려 내 마음은 매우 괴로웠다. 그 아이는 도서부를 탈퇴했고 도서관에도 오지 않았다. 여름 방학이 되기 전 아이를 불러 나의 부족함과 미숙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달했다. 이후 가끔 아이는 도서관에 왔지만 내가 말을 걸어도 차가울 뿐이었다.

졸업이 가까워졌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내 마음 속 돌덩어리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래서 아이를 통해 어머니께 책 한 권을 보냈는데, 며칠 뒤 우리 집으로 다시 배달되어 왔다. 그 아이의 아픔을 보듯 내 마음도 무척 아팠다.

그 아이는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이다. 어느 곳에 있든지 도서관에 대한 좋은 기억과 행복한 추억을 쌓아 가길 바란다. 도서관은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연결해 주는 통로이며, 자신을 발견하고 치유해 나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그 아이는 분명 그렇게 자신을 세워나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다시 한 번 미안하다는 말을 그 아이에게 전하고 싶다.

여전히 부족한 나를 바라보며 까만 눈동자를 빛내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 그 눈동자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 또한 나를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단련시키는 채찍이기도 하다. 어떤 교사가 좋은 교사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게 주어진 학교도서관과 그 속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마음껏 사랑하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후회하지 않도록. 그 속에서 비록 내가 상처받을지라도, 그리고 뜻하지 않게 상처를 주게 되더라도, 사랑하다 쓰러지리라.

박미진 안심중학교 사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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