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미리엘 주교의 은촛대

1795년 장 발장은 어린 조카 7명을 위해 빵집의 유리창을 깨고 빵 한 개를 집어 달아나다가 빵집 주인에게 잡힌다. 훔친 빵 한 조각의 대가는 가혹했다. 그는 징역 5년에 처해졌으며, 4번의 탈옥 기도로 인해 19년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복역을 마친 장 발장은 한 도시에 들러 숙박할 곳을 찾지만 전과자라는 낙인 탓에 형무소와 개집에서도 쫓겨난다. 어느 노부인의 소개로 찾아간 집에서 장 발장은 미리엘 주교의 환대를 받게 된다. 다음날 장 발장은 주교의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다 헌병에게 체포돼 미리엘 주교의 집으로 끌려온다. 하지만 미리엘 주교는 장 발장에게 두 개의 은촛대까지 내어주며 "은식기를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쓰겠다고 약속한 일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장 발장은 주교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고, 정직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한국에는 '장 발장'은 수없이 많지만 '미리엘 주교'는 적다.

이달 17일 대구 동부경찰서 유치장을 탈주했다 6일 만에 잡힌 최갑복 씨. 그는 전과 25범으로, 인생의 절반가량인 23년 8개월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최 씨는 16세 때 처음 절도죄를 저질러 징역 8개월을 살았다. 22년 전에는 절도 혐의로 구속돼 교도소로 이송 도중 경찰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호송버스 쇠창살을 제거한 뒤 창문을 통해 달아나기도 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최 씨는 또다시 중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8월 말까지 대구에서 절도 혐의로 경찰에 검거된 19세 미만 청소년은 1천602명으로 전체 절도범의 34.1%를 차지했다. 하루 평균 6, 7명의 청소년이 절도 혐의로 붙잡힌 셈이다.

문제는 최 씨처럼 호기심이나 돈이 필요해 절도를 저지른 청소년들이 다시 절도를 일삼고 나이가 들면서 강력 범죄까지 저지르는 악순환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청소년 범죄자는 가정폭력과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회환경 탓에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다. 작은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도 유사한 경험을 한 다른 소년범이나 우범소년과 어울려 다니며 비행을 반복하게 된다. 학업을 포기하거나 일정한 직업을 가지지 못한 청소년들은 성인이 되면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 때문에 더 큰 범죄를 저지른다.

청소년 범죄가 성인 범죄로 이어지는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범죄자가 어릴수록 교화의 효과가 크다. 소년범이 받게 될 사회적 불이익을 최소화하고 갱생의 가능성을 높이면 범죄가 악순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제목인 '레 미제라블'은 '가난에 허덕이고 수치스러운 생활이나 행위를 하고 있는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소설 '레 미제라블'의 마지막에서 장 발장은 친딸처럼 키운 코제트가 지켜보는 앞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머리맡에는 미리엘 주교가 선물해 자신의 인생을 바뀌게 한 두 자루의 은촛대가 놓여 있었다.

최 씨는 전과 25범이 될 동안 자신을 새사람으로 만들어 줄 '미리엘 주교'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최 씨처럼 10대 때 범죄의 수렁에 빠졌던 '레 미제라블'에게는 '은촛대'를 선물할 수 있는 '미리엘 주교'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과 사회, 우리 모두가 '미리엘 주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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