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가운 길에서 숨져간 이들이여…' 동짓날 '노숙인 추모제'

얼굴 없는 사진과 위폐, 시민들 걸음 멈추고 애도

1년 중 가장 밤이 길다는 동짓날인 21일 대구 동대구역 지하철 역 앞에서
1년 중 가장 밤이 길다는 동짓날인 21일 대구 동대구역 지하철 역 앞에서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가 열렸다. 김태형 기자

1년 중 가장 밤이 길다는 동짓날인 21일 오후 대구 동대구역 지하철 역 앞에서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가 열렸다. 대구 쪽방상담소와 대구 주거복지센터가 2009년부터 매년 동짓날이 되면 고인이 된 노숙인을 기리기 위해 여는 추모제였다.

이날 추모제에 차려진 분향소 입구에는 "우리는 당신을 기억합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분향소 안에는 얼굴 없는 영정 사진과 함께 홀로 죽음을 맞이한 20명의 위패가 안치됐다. 이들은 거리나 쪽방에서 외롭게 죽은 50~80대의 노숙인들이다.

추모제에는 노숙인들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분향소에 들어와 고인들을 추모했다. 30년간 쪽방에서 생활했다는 김영수(75'대구 중구 동인동) 씨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추모제를 한다는 말을 듣고 달려왔다"고 했다. 시민 김무임(76'여'동구 방촌동) 씨는 "차가운 방에서 돌봐주는 가족 하나 없이 끙끙 앓다 눈을 감았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예년보다 강한 한파가 몰아닥친 올겨울 거리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노숙인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에 따르면 노숙인, 행려병자 등 일정한 주거지 없이 거리를 떠돌다 사망한 사람들은 '행려사망자'로 분류된다. 이 중 가족 등 연고자를 찾지 못하거나 가족이 인계를 거부하는 경우 무연고사망자로 분류돼 대구시가 운영하는 '행려사망자 공동묘지'에 10년간 안치된다. 현재 이곳에 보관된 무연고사망자는 1천500명에 달한다.

올해 대구 무연고사망자는 10명. 지난해 34명에 비해 줄었지만 이는 올해부터 기초생활수급자는 수급기관에서 따로 장례절차를 진행해 제외됐기 때문이다. 올해 중구에서만 장례절차를 밟은 기초생활수급자가 15명이라는 점과 가족에 인계된 사망자를 감안하면 실제 겨울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홀로 죽음을 맞이한 행려사망자는 더 많다.

대구시는 한겨울 거리 노숙인의 동사를 막기 위해 노숙인 쉼터, 노숙인상담지원센터, 구세군 상담소 등 총 8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자립 의지가 있는 노숙인에 한해 월세방과 임대주택을 얻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또 쉼터는 공공근로나 부업 등 일자리를 제공해 자립을 돕고 있다.

문제는 정부 대책이 노숙인들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대구시가 운영하고 있는 노숙인 쉼터는 265명이 이용할 수 있지만 현재 175명만이 쉼터를 찾고 있다. 쉼터가 노숙인의 주거욕구와는 거리가 먼 공동생활형 주거공간이기 때문. 동대구 노숙인 쉼터 김동욱 소장은 "대부분의 노숙인은 음주, 흡연이 금지되고 취침 및 기상, 식사시간이 정해진 규칙적인 단체생활을 불편하게 느껴 쉼터에 오래 있지 못한다"고 했다.

공공근로도 마찬가지. 정해진 시간 동안 한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은 이들에겐 익숙하지 않다. 이 때문에 동대구 노숙인 쉼터에서 올해 공공근로 최장 기간인 9개월을 모두 채운 노숙인은 30명 중 2명에 불과하다. 김 소장은 "노숙인이 쉼터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립할 수 있는 일자리와 잠자리다. 지금과 같은 획일적이고 규율적인 도움이 아닌 유연한 일자리와 맞춤형 잠자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구 주거복지센터 최병우 소장은 "노숙인에게는 쉼터 형태의 공동생활형 숙소가 아닌 쪽방이나 임대주택과 같은 자기만의 보금자리가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쪽방은 월 15만~20만원의 월세를, 임대주택은 100만원의 보증금을 자부담해야 한다. 최 소장은 "쪽방과 임대주택을 얻어도 결국 돈이 없어 다시 거리로 내몰리는 게 노숙인들의 현실"이라며 "쪽방과 임대주택에 들어가는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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