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상 별난 인생] 왜 하필 '거시기' 냐고?…모두들 좋아하니까!

남근 목공예가 허윤규 씨

세상은 똑같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길지 않은 인생살이, 자신만의 색깔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새로운 삶에 도전하거나 유별난 사람들이다. 남다른 끼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남의 시선에는 아랑곳없다.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며 내가 즐기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청송 주왕산의 신비한 산세에 반해 아예 주왕산 속으로 들어와 사는 산 사람이 있다. 그곳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끼를 발산하고 있는 허윤규(64'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씨다. 그는 신체에 대한 신비를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바로 남근 조각이다. 1996년 주왕산 사람이 된 후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올해 16년째다. 그동안 예술과 사회와의 괴리감으로 숱한 마음고생을 했다. 하지만 내재된 예술적인 재주와 끼, 감각은 숨길 수 없었다. 남근 조각을 하는 사람답게 호도 '남근'(男根)이다. 산악인 박재곤 씨가 '남근 조각으로 남쪽의 뿌리가 되라'는 뜻으로 호를 지어 선물했다. 주왕산 입구 야영장에 있는 자신의 집(가게)도 '남근네식당'이다.

◆아녀자들 처음엔 꺅~ 나중엔 "고놈 참 튼실하네"

"왜 남근을 조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모두 좋아하니까"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이미 그런 질문은 물릴 정도로 많이 받았다는 표정이다. 이런 경지에 도달하기까지는 숱한 마음고생을 했을 법하다. "요즘은 남근 조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허 씨의 부인 김혜자 씨는 "이제는 그냥 작품이라고 생각돼 무덤덤해졌지만 처음엔 '하회탈이나 깎지 왜 저런 걸 깎을까'하면서 속상했다"고 한다. 자녀들도 애써 표현은 하지 않아도 아버지가 하는 일을 좀 숨기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성장하면서 오히려 예술작품으로 이해했다.

남근 조각을 한다고 해서 그가 '괴짜'는 아니다. 평범한 삶을 살아온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지난주 기자가 청송 주왕산 작업장을 찾았을 때도 그는 성탄 미사에 참례하느라 취재진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봤다. 안방에 대형 '남근 장승'이 떡 버티고 있다. 전시관에는 다양한 모습의 크고 작은 남근 작품이 있다. 무엇보다 눈에 확 띄는 것은 '남근네식당'에서 전시관으로 통하는 문의 손잡이다. 이것 역시 남근 조각이다. 허 씨는 "부녀자들은 처음 보는 순간 '아이고! 얄궂어라! 이게 뭐꼬?'하다가 나중에는 만져보며 '고놈 참 실하게 생겼다'고 한다"며 너털웃음을 보인다.

◆경주서 '남근목' 본 후 꽂혀…사업정리하고 청송으로

남근네식당 곳곳에 남근 작품이 있다. 전시장 앞마당 원두막에도 큼지막한 작품들이 서 있다. 그의 작업공간은 집 뒤에 있는 컨테이너다. 그의 손을 거치면 어떤 나무라도 금세 작품으로 변한다. 허 씨가 남근 조각을 하게 된 이유는 어쩌면 숙명인지도 모른다. 목수의 아들인 허 씨는 물려받은 끼를 숨길 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늘 나무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면서 놀았다. 결혼 후 마산과 창원에서 전자제품 대리점 등을 하면서도 취미로 틈틈이 목공예 작품을 만들었다.

그가 남근 조각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있다. 1995년 국립경주박물관에 갔을 때 안압지관에서 전시하던 '남근 목' 13점을 본 순간, 심장에 무엇인가 꽝하며 와 닿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나무로 남근 모양을 깎아보고 싶어졌다. 1996년 창원에서 사업을 정리하고 무조건 청송 주왕산으로 들어왔다.

'전기 없는 마을' 내원동으로 들어가 남근 조각에 심취했다. 남다른 손재주를 물려받아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멋진 작품이 됐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작품은 열쇠고리 등 액세서리부터 대형 작품까지 수만 점에 이른다.

그의 작품의 상당수는 제주 성테마박물관에서 구매하거나 전시용으로 임대했다. 강원도 홍천 성테마공원인 '청정 조각공원'과 삼척 해신당 남근공원에서도 주문이 쇄도했다. 부인 김 씨는 "남들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업이 어려워 고생했으나 남근 조각을 시작하고부터 이상하게 살림이 펴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목욕탕 가면 '모델'들 널려…작품 전국서 주문 쇄도

허 씨는 2001년 삼척에서 열린 세계남근깎기대회에 출전해 물고기 모양의 남근상으로 장려상을 받았다.

그때 참가한 중국, 일본, 루마니아 등에서 온 외국인 조각가와 한국인 조각가들이 모여 결성한 '국제전통조각연맹'에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남근 조각은 아직도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몇 차례 의장특허를 신청했으나 좌절되기도 했다.

허 씨는 "이제 더 감추거나 숨길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앞으로 멋진 전시관을 만들어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취재를 끝내면서 "도대체 그 다양한 작품의 구상은 어디서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뜻밖에 간단했다. "대중목욕탕에 가면 무료 모델이 얼마든지 있다"며 호탕하게 웃어넘긴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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