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길거리 딤섬 런치

부추와 돼지비계 버무린 중국 시골 만두 '아! 이 맛이야'

만두를 처음 먹어 본 것이 언제인지 정확하지 않다. 짜장면은 중학생 때, 생선회는 대학 입학 직후, 만두는 아마 그 이후일 것 같다. 음식을 처음 먹어 본 날짜보다는 그 후에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만두를 찾아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차이나타운을 지나치는 경우가 있으면 아주 맛있는 딤섬(Dim sum)을 먹어 봤으면 하는 충동을 느낀다.

짜장면은 중국 음식의 왕중왕이다. 짜장면 자체가 값비싼 요리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만두는 별로 먹어 본 적도, 먹고 싶지도 않은 그렇고 그런 음식이었다. 그런데 캐나다 여행 중 밴쿠버 차이나타운의 딤섬 전문 음식점에서 여러 종류의 만두를 먹어 보고 나서 '무식이 용감'한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맛(味)은 식(識)과 통한다'는 말이 있다. 줄여 얘기하면 '뭘 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예술은 물론이거니와 음식까지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리에 가깝다. 경험하지 않은 미래를 동경하지 않고 무조건 경원하는 태도는 아집을 고집불통으로 변환시킬 뿐이다. 캐나다 여행에서 돌아와 일부러 만두집을 찾아가 보았다. 기존 관념을 버리고 만두 예찬론자로 변하긴 했으나 나의 입맛이 원하는 그런 딤섬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5년 뒤 중국의 황산 등반에 나섰다. 5시간 걸어 올라가 북해호텔에서 자고 8시간을 걸어 도원호텔로 내려오니 황산에서만 3박 4일이 걸렸다. 계림으로 떠나기 전 황산시내 시장에 잠시 들렀다. 마침 길옆 가게에서 돈 몇 푼으로 만두를 샀더니 밴쿠버의 딤섬 런치에서 먹어 본 그 맛보다 오히려 좋은 것 같았다. 악우들도 한결같이 "이렇게 맛있는 만두는 처음 먹어 본다"며 찬탄들이었다.

황산에서 먹어 본 단 한 개의 만두가 내 의식 속에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만두는 중국이다.' 회전 수레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좌석에 앉아 눈 사냥으로 집어 올려 먹는 밴쿠버 딤섬 런치의 맛은 중국인 셰프가 캐내디언 입맛에 맞게 만든 인공의 변형된 맛이었다. 그러나 황산 시장 아줌마가 직접 반죽과 소를 주물러 만든 만두는 먹거리의 원형에 가까운 그런 맛이 아닐까.

만두에 관한 나의 취향이 중국 쪽으로 기울 무렵 구채구란 '물의 계곡'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상해에서 가는 항로가 없어 우리 일행은 서안에서 버스를 타고 12시간을 달려 구채구에 도착했다. 북경에서 2박 3일간 열차를 타고 상해로 달려온 가이드는 조선족 24세인 이광화란 청년이었다. 그 친구를 만나는 순간 나의 해묵은 만두 욕심이 위장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가이드 팁은 알아서 줄 터이니 내가 버스를 세우라면 세워야 한다. 알겠제." "예." 가이드들은 미리 예약된 식당에 관광객들을 모시고 가서 매상을 많이 올려야 주인으로부터 매출액에 대한 사례비를 받는 것이 관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드들은 길거리 시장에 차를 세우라면 불결한 위생을 핑계로 승객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일쑤다.

가이드의 양해를 얻은 후 마침 만두집이 보이길래 차를 세웠다. 만두의 크기가 꿩알만큼 작게 빚어둔 가게로 들어갔다. 갖고 다니던 배갈 한 병과 만두 한 소쿠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졌다. 다시 옆집으로 들어가 갓 빚은 중간치기 만두 한 솥을 싹쓸이하고 일어섰다. 양쪽 가게의 만두 값은 7천800원이었는데 한화 6만원짜리 우량예(五糧液) 두 병이 날개도 없이 대륙의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름조차 잊어버린 시골에서 맛본 부추와 돼지비계가 적당히 버무려진 만두 맛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였다.

지난겨울 손자들의 방학 여행에 조손(祖孫) 3대가 함께 떠나기로 했다. 일본 기타큐슈(北九洲)지역의 모지항(門司港)과 시모노세키 일대를 샅샅이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식사는 전통시장의 우동 집과 슈퍼마켓의 초밥이나 김밥으로 때우고 밥 먹을 장소가 만만찮을 땐 소공원의 벤치나 길거리조차 마다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방법은 바닷가 여행을 자주 하는 나의 도반들이 흔히 하는 방식이다.

여행 이틀짼가, 고쿠라(小倉)역 인근의 탕가시장에서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양자강돼지만두집에서 어른 주먹만 한 만두 3개(개당 190엔)를 샀다. 시장 내 가게들은 장소가 좁아 모두가 테이크아웃이란다. 우리 가족은 맥도날드, 롯데리아, 시로야 빵집이 줄지어 있는 고가교 밑 간이 의자에 앉아 만두 반쪽을 먹으며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할아버지!" "왜." "히히."

수필가 9hwal@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