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 딸 걱정 "따뜻한 물 잘 나오나?"
배움에 목말라 하시는 아버지는 약주를 드신 날이면 나와 동생을 거실에 앉혀놓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곤 하셨다. 취기가 오른 아버지 모습도 싫고, 공부 공부 노래하시는 것도 듣기 싫어 나는 그저 "예, 예, 예"로만 대답했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아버지의 잔소리가 서서히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어학연수를 가기로 마음을 굳혔고 아버지께 의논을 드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대뜸 안 된다고 하셨다. "둘이 가는 것도 아니고, 안 된다. 너희들은 뉴스도 안 보느냐. 이 각박한 세상에 혼자 겁 없이 어딜 간다는 말이냐."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던 어느 날, 아버지는 한국에서 공부하면 안 되겠느냐고 하셨다. 나는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며 아버지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딸이 되어 돌아오겠다고 했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대로 아버지는 딸한테 져 주셨고, 마침내 어학연수를 떠나던 날,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아주면서 "첫째는 건강, 둘째는 사람 조심, 셋째도 사람 조심해라"고 당부하셨다. 물론 공부하라는 말씀은 더는 안 하셨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버지는 보고 싶으시다면서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하셨고 따뜻한 물이 잘 나오는지. 빨래는 어떻게 하는지, 반찬은 잘 나오는지 등등 엄마보다 더 자상하게 여쭤보셨다. "딸, 밥 많이 먹었나.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침 흘리지 말고 사 먹어라. 돈 부쳐줄게."
수업만 끝나면 카카오톡으로 아버지랑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난 다섯 살 꼬맹이가 되어 아버지를 부르고 있었다. 자상한 우리 아버지, 당신이 소망하는 꿈을 제가 꼭 이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딸이 꼭 되겠습니다.
양혜인(대구 북구 복현동)
#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그 이름, 아버지
내가 딸이어서 그럴까? 철이 들면서부터 '엄마'라는 말에는 항상 애잔한 뭔가가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단어에는 늘 무덤덤하기만 했다. 요즘 아버지들과는 다르게 늘 말씀이 없으시고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경상도 분이라, 조곤조곤 풀어갈 대화에도 버럭 고함이 앞서곤 하셨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땐 아버지가 그저 무섭고 어렵기만 한 존재였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백일기도로 어렵게 얻은 외동아들이었다. 그렇게 귀하게만 자라셨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 고단한 삶을 살아오셨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자식들 모두 장성하여 떠나보낸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가까운 시골에 텃밭을 일구셨다. 말이 텃밭이지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져 나중에는 30여 가지의 채소를 심으셨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우리 가족의 입맛이 자연의 맛을 알아 갈 때쯤, 나는 속 깊은 아버지만의 자식사랑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며 당신의 건재함을 순간순간 확인하고, 몸은 비록 힘들지만 마음은 항상 청년으로 사셨던 아버지를….
1년 전 늦가을, 아버지의 별세를 전하던 동생의 전화를 받던 그 순간은 아직도 꿈이었으면 싶다. 동생의 목소리는 분명 또렷하게 들리는데 믿을 수가 없었던 나는 '뭐라고? 뭐라고?' 몇 번이나 되물었었다. 감나무에서 감을 따다 그만 사고를 당하셨단다. 고향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 아버지를 모셔두고 돌아오는 길, 야속하게도 눈길 닿는 곳마다 감나무였다. 집집마다 빨갛게 달린 감들을 그때는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뒤돌아서서 본 산소 입구에도 주인 없는 감나무가 서 있었다.
채소를 사 먹어본 적이 없는 나는 대형마트에서 말쑥하게 다듬어진 채소들을 볼 때마다 은연중에 아버지의 것과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다.
박민정(대구 달서구 용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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