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의 고양이는 또 하나를 데려오고 싶게 만든다.'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한 말이다. '노인과 바다''무기여 잘 있거라' 등의 명작을 남긴 그는 고양이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그와 함께 살던 반려묘의 수만 30여 마리에 달했고, 사후에 박물관이 된 그의 집에는 지금도 그와 함께하던 반려묘의 후손들이 머물고 있다고 한다.
여러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 나에겐 줄곧 꿈 같은 이야기였다. 처음에 체셔를 데려올 때는 학생이라서 경제적 여유도 없고 주거공간도 좁았다. 그리고 체셔와 살기 시작하고 나서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언젠가부터 떨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감기 때문에 방문한 병원에서 알레르기 검사를 받은 결과, 내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체셔는 이미 내 소중한 반려묘이고 함께 사는 것이 당연했다. 대신 더 이상의 고양이를 들이는 것은 무리라 판단했고, 그렇기에 체셔가 내 생애 첫 고양이이자 마지막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심하던 알레르기가 규칙적인 식습관과 운동을 지속했더니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증상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다시 한 마리 정도는 더 있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다. 체셔는 털이 길었기에 털이 짧은 고양이는 어떨까 싶기도 하고 도도하고 무뚝뚝한 체셔 덕에 개냥이(강아지처럼 사람을 잘 따르고 애교가 많은 고양이를 일컫는 말)는 어떨까 하는 마음도 생겼다. 물론 생각뿐이었다. 한 마리를 더 데리고 온다는 것은 순전히 내 욕심이란 걸 알고 있었고 체셔는 외로움 없이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인연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문득 찾아왔다. 2012년 겨울 어느 날, 타지에서 생활하던 오빠가 적적함을 느꼈는지 고양이를 데리고 오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처음엔 내가 알레르기가 있듯 오빠도 없으리라 보장할 수 없고, 또 곁에 없지만 체셔만으로도 충분했기에 반대했다. 하지만 오빠는 알레르기를 유발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네바 마스커레이드'(Neva Masquer ade)라면 괜찮지 않겠냐며 나를 설득했고 조금씩 마음이 동하기 시작한 나는 '그럼 일단 네바를 한 번 보기라도 하자'며 함께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 수년 동안 고민만 했던 두 번째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와 마주한 고양이는 청명한 하늘빛 눈망울에 쿠앤크로 배치된 달콤하고 보송보송한 털 코트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경계하는 기색 없이 처음 본 우리의 품에 얌전히 안겨서 고롱고롱거리는 녀석의 모습에 오빠와 나는 순식간에 마음을 뺏겼다.
그 순간 냉정하게 판단해보고 생각해야 할 것들이 분명 많았다. 하지만 난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던 딸과 함께 구경 갔다가 강아지 눈망울에 마음을 뺏겨 강아지를 데려왔다던 어머니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분이 그랬듯 도저히 우리도 그 고양이를 놓고 돌아설 수가 없었다. 미처 이름조차 못 지은 채 데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체셔 고양이가 나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름을 딴 '앨리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날의 섣부른 결정으로 인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러나 수많은 고양이들 가운데 그 순간 앨리샤가 눈에 들어왔던 건 필연이지 않을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김춘수 시인의 '꽃'의 첫 구절처럼 앨리샤는 우리에게 왔고 우리의 두 번째 반려묘가 되었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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