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먹통 블랙박스, 전세버스 업계 "우리도 당했다"

작년 정부주도 창작 사업, 공급 달리자 불량품 유통

대구 전세버스들도 먹통 디지털 차량운행기록기(DTG'Digital Tacograph)를 (본지 22일 자 5면 보도)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버스업계에서는 정부가 주도한 디지털 차량운행기록기 장착 사업이 부랴부랴 진행되면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렸기 때문이란 입장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처음부터 불량 디지털 차량운행기록기가 시중에 유통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전세버스 업계에선 이미 터진 문제=지난해 12월 대구 수성구 대흥동 월드컵경기장 인근 도로는 대구시내 전세버스 300여 대로 가득 찼다. DTG 설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문제는 이 중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DTG가 상당수라는 것이다. 운행 뒤 기록돼야 할 자료가 없고 있다 하더라도 메인 서버에 송출되지 않고 있다는 것.

심지어 일부 전세버스는 DTG 장착 후 시동이 걸리지 않는 치명적 결함이 발생하기도 했다. 모 대학 학생 수송 전세버스로 활용되던 이 전세버스는 한 달간 영업을 하지 못했다.

이 같은 문제는 전국적인 현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형 전세버스 사업자인 K사에 장착된 제품의 경우 170여 대의 버스에 장착된 DTG가 모두 불량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세버스 업계에서는 정부가 주도한 디지털 차량운행기록기 장착 사업이 부랴부랴 진행되면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렸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세버스 업자는 "기술적 난이도가 높아 DTG 설치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인제야 겨우 불량이 나타나는 것을 알아채고 있는 중"이라며 "정부에서 하라고 하니까 서둘러 장착했는데 문제가 커졌다"고 했다.

◆과다 수요에서 불거진 먹통 DTG=그러나 일각에서는 애초부터 불량 디지털 차량운행기록기가 시중에 유통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는 바람에 너도나도 공급책으로 나섰다는 것. 이 때문에 교통안전공단에서 승인받지 않은 제품들이 시중에 유통됐다는 것이다.

이런 의혹이 나오는 배경에는 교통안전공단의 성능시험 과정에 빈틈이 있기 때문이다. 교통안전공단의 성능시험을 통과해 승인받은 업체는 기기 생산능력이 없더라도 버스업계에 기기를 납품할 수 있다. 기기 생산업체에서 사들인 기기를 자신의 상표를 달아 내다 파는 '주문자 생산 방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250만 대가 넘는 화물차 시장이 DTG 장착 시장으로 남아있다는 것. 특히 먹통 DTG가 범람하고 있지만 성능을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걸려 자칫 먹튀 공급업체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단 DTG를 장착하기만 하면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화물차 기사들도 저렴한 가격에 나오는 제품을 적잖게 설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대구시는 22일 '사업용 화물자동차에 대해 국토부에서 고시한 성능시험 인정 DTG 장착을 완료한 운송사업자 중 신청자에 한해 1대당 1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바 있다.

대구시 교통국 관계자는 "최근 들어 DTG 성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확인 작업을 진행 중이다. 과다 수요로 DTG 장착이 늦어지면서 초기 점검도 늦어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