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1952~)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시집 『게 눈 속의 연꽃』(문학과지성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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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보면 세 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198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인이 수배 도중 동지를 기다리며 가슴 졸이는 장면 하나, 어떤 사내가 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리며 가슴 태우는 장면 하나, 그리고 사람도 아닌 어떤 암울한 현실이 오지 않는 환한 희망의 얼굴을 기다리며 가슴에 손을 얹는 장면 하나. 셋 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완벽한 사랑을 기다리는 주체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완벽한 사랑은 아직 이 세상, 누구에게나 오지 않았다. 여름이 오면 봄은 없고, 겨울이 오면 가을은 없다. 주체의 변이만 있고 기다림은 늘 앞자리 어디 휘적휘적 가고 있을 뿐이다. 60년짜리 인생의 숙명이다. 현실이다.
안상학<시인·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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