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실제가 꼭 들어맞을 때 명실상부(名實相符)하다고 한다. 이 말이 갖는 이미지는 긍정적이다. 무언가, 누군가를 치켜세우고 싶을 때 이 말을 쓴다. 겉과 속이 똑같을 때, 이름에 걸맞은 결과가 나올 때도 마찬가지다. 여기엔 자신감과 자존심이 담겨 있다. 이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덕목이다.
중국 진나라의 재상 여불위는 여씨춘추에서 리더의 덕목 중 하나로 명실상부한 사람을 가려내는 능력을 들었다. 군왕은 현인의 현명한 부분, 불초한 사람의 불초한 부분을 정확하게 짚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명실상부한 사람을 가리고 백성들에게 사물의 진면목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줘야 한다는 가르침을 남겼다.
사마천은 이에 반해 이름값이 실제를 앞서는 사람을 두고 명성과실(名聲過實)이라 했다. 이름값을 못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는 명성이란 것이 실제보다 부풀려지기 쉬우니 그 명성만으로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명실상부한 인물과 명성과실한 사람을 구분하지 못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그런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는 탄식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사람을 잘못 봤다는 고백이다.
현자(賢者)라고 선택했던 자가 알고 보니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다. 국정 철학을 나누자고 발탁했더니 해외 방문에 따라가 인턴하고 술이나 마시고 분탕질하는 기이한 창조적 철학의 소유자였다. 자신의 기행(奇行)이 문제를 일으키자 정권에 대한 의리는 오간 데 없고 자기 책임이나 면하려는 쩨쩨하고 옹졸한 소인배였다.
국정을 대변한다는 사람이 명실상부하지 않으면 나라에 큰 혼란이 온다. 안 되는 것을 된다고 하고 틀린 것을 맞다고 해서야 나라가 바로 설 리 없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조차 구별 못 하는 인물이라면 애당초 그 자리를 탐할 자격도 없었다.
명실상부를 추구하는 지도자라면 이를 간파했어야 했다. 진실과 거짓, 이름과 실제가 부합하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먼저였다.
16세기에 살다간 토정 이지함은 만언소(萬言疏)에서 "해동청에게 새벽을 알리는 일을 맡긴다면 늙은 닭만도 못하고, 한혈구에게 쥐 잡는 일을 시킨다면 늙은 고양이만도 못하다"고 했다. 해동청은 고려에서 바다를 건너왔다 하여 중국에서 우리나라 매에 갖다 붙인 이름이다. 이덕무는 그의 청장관전서에서 매 중에 가장 뛰어나고 털빛이 흰 것을 송골이라 하고 푸른 것을 해동청(海東靑)이라 한다고 했다. 한혈구(汗血駒)는 땀이 어깻죽지에 피처럼 흐른다 하여 이름 붙여진 천리마의 일종이다. 천하가 알아주는 좋은 매에게 닭이나 하는 일을 시켜서야 일이 될 리 없다. 천하의 명마에게 고양이나 하는 일을 시킨다면 이 또한 일을 제대로 해보자는 뜻은 아니다.
하물며 그 반대의 경우라면 더 말하기 부끄럽다. 늙은 닭이 어찌 날렵한 매처럼 사냥을 하겠으며 늙은 고양이에게 한 걸음에 천 리를 내달리라고 어찌 주문할 것인가.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든 것은 박 대통령 스스로에게서 나왔다. 대통령의 수첩에서 나온 인물 중 총리와 장'차관 후보 7명이 낙마했다. 정권 초기 지지율이 대통령 당선 때 지지율보다 더 떨어진 이유로 불통 인사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남북 대치 국면 속에서 그나마 회복세를 보이던 지지율이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것도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이 그만큼이었기 때문이다.
금은 100% 순금이 없고, 사람은 100% 완벽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한 자밖에 안 되는 나무에도 옹이가 있기 마련이고 한 치가 안 되는 옥에도 티가 있다. 완전무결한 잣대를 가지고 사람을 재다가는 쓸 만한 인재를 고르기는 영 글렀다. 국회 청문회 과정이 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래도 인재를 제대로 골라 쓰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다. 대통령이 앞으로 더 다면적으로 철저하게 검증하겠다고 했다. 인사 자료도 차곡차곡 쌓으면서 상시적으로 항상 검증하는 체제로 바꿔 나가고 있다고도 했다. 불통 인사, 수첩 인사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대통령이 명실상부한 인물을 가려낼 지혜를 하루빨리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번 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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