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의 시사회를 다녀왔다. 작품을 보기 전 내용을 살짝 예측해버린 나는 실제 극장에 앉아 영사되는 다큐멘터리를 마주하며 상영 내내 엄청난 감정의 매타작을 당했다. '춤추는 숲'은 산들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추는 꽃과 나무, 그 사이를 나풀거리며 날아다니는 나비와 같은 생명들을 간직한 '성미산'이라는 작디작은 산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주민들이 자신들의 마을을 마음으로 몸으로 지켜나가는 이야기이다.
이미 마을이라는 의미가 도심에서는 사라진 지금, 서울의 한복판 성미산 사람들은 꿋꿋하게 마을의 근간인 산과 자연을 터전 삼아 벗 삼아 노력으로 일궈가며 흥으로써 삶을 채워나간다. 이러한 성미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대하면서 마을 공동의 행복을 지향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에 부러움과 감동이 밀려왔다. 하지만 마을을 위협하는 거대한 존재가 나타나고, 그 거대한 존재로 인하여 고군분투하며 마을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습과 성미산의 일부가 파괴되어지는 순간 또다시 그 수반된 고통을 이겨나가는 성미산 사람들의 모습에서 감동과 울분의 쓰나미,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갈등과 두려움의 쓰나미가 몰아쳐댔다.
마을의 산 귀퉁이를 임의적인 단순개발 목적으로 밀고 깎고 잡아 뽑아내 각지고 평평한 거대한 시멘트의 축조물로 만들어 현금 다발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려는 권력자들에 맞선 사람들. 살 만한 마을,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가려는 이들이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터전에 대한 위협과 마주 서는 치열한 순간들을 이 다큐멘터리는 정말 블록버스터급으로 빼곡하게 담아낸다.
인간은 곤충들처럼 더듬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동물들처럼 감각기관이 뛰어나지도 않지만, 불안을 느끼고 인식하며 위협을 감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감각 본능이 있다. 그러한 인간의 본능적 감각은 거미줄 같은 도심의 체계에 종속되어 있는 자들보다 자연적 원형의 삶 속에 가까이 있는 자들에게 훨씬 기민하게 작동되어진다. 거대한 체계 안에 종속된 자들은 자신들이 속한 거대한 체계가 폭삭 붕괴되지 않는 한 왠지 모를 안전함에 기댄 채 산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체계 안의 어떤 존재가, 절대적인 누군가가 체계의 붕괴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무의식적 믿음으로 훗날 자신에게 돌아올 참혹한 위협을 감지하지 못한 채 그대로 일상을 유지시켜 나간다.
하지만 이 작은 산 아래 모여 사는 자들은 그 산의 일부가 훼손되어지려는 순간 자신들의 전체 터전의 붕괴 위협을 감지하고 하나의 목표로 향한다.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오랫동안 살아오고 공들였던 마을이 붕괴될 수 있다는 본능의 더듬이가 서로서로에게 작동한 것일 테다. 수십 년간 얼마나 많은 마을이 가공할 권력의 폭력 안에서 사라졌을까? 개발과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얼마나 많은 자연과 자연 속 생명이 사라지고 그와 함께했던 마을들이 사라져 주민들이 개발의 이산가족이 되었을까?
사회가 바보 같은 권력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힘이 있는 바보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왕이라도 된 것 마냥 공중부양한 채로 국민을 깔고 내려다보면서 '국민을 위해서'라고 소리쳐댔다. 하지만 이어진 '잘 살아보세'라는 단 한마디로 사람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토착 마을들을 긁어낸 자리에 세운 현대적 건물 안으로 권력자들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뀌어버린 이곳에는 이제 나비와 참새들이 사라져버렸고, 아이들은 달구어진 아스팔트 위에서 시멘트벽을 만지며 놀이를 한다. 몸에는 아토피와 천식, 비염을 달고 살며 수용소 같은 학원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꼬불꼬불 골목, 아이들의 웃음소리, 인사를 건네는 이웃, 동네 어귀에서 고추를 말리며 수다를 나누는 할머님들,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의 소리, 동네 누나와 형을 따라 잠자리채를 들고 곤충채집을 하던 뒷산.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에는 다시 이러한 살아 숨 쉬는 마을을 만들고 복원해가려는 성미산 마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겨 있다.
양익준/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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