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장맛비가 시원스레 쏟아지고 있다. 이 비가 그치면 한동안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더욱이 올해는 전력난을 이유로 냉방기 가동도 제한되어 그야말로 찜통이 따로 없을 전망이다. 하지만 오는 11월 7일 수능을 앞둔 수험생만큼 힘겹게 여름을 나고 있는 사람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수험생의 거의 전부인 것만은 부인하기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이다.
201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우리 대구경북 지역 수험생들이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최근 뉴스가 눈길을 끈다. 다행스럽다. 그런데 수능시험에 치중한 나머지 수시 모집 대비는 부실해 최근 우리 지역의 대학 입시 성과가 좋지 않았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우리 지역 학교와 교사, 교육청의 진학 지도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봄쯤 모 일간지에서는 서울 강남의 소위 일류 고교와 대구 지역 소위 일류 고교의 수능 성적과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대학 진학 실적을 비교'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결론은 수능 성적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지역 고교가 높지만, 일류 대학 진학 실적은 서울 강남 명문고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지방 고교의 진학 지도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당연히 뒤따랐다.
정말 그럴까. 2008~2012학년도 서울 일반고의 SKY 진학 실적을 분석한 결과는 '진실'이 따로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남구, 서초구 등 서울 강남 지역과 그 밖의 서울 비강남 지역의 명문대 진학 실적의 차가 계속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능이 쉽게 출제되고 수시 비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서울 내 지역 격차도 오히려 심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진학 지도 '부실'이라는 멍에는 서울과 지방의 문제가 아니고, 서울 강남과 그 밖의 지역에 대한 문제로 봐야 한다.(물론 이 논란에서 몇몇 특목고 등 일부 특수 고교는 제외된다.)
올해 대학 입시 전형은 무려 2천883개라는 통계가 있다. 그것도 한때 3천300여 개까지 늘었다가 줄어든 것이란다. 어떤 초인적 교사와 학교가 학생들 가르치고 생활 지도하면서 이 복잡하고 많은 대입 전형을 통달할 수 있을 것인가. 진학 지도 잘한다는 서울 강남의 한 명문고가 한 번에 2시간씩 11회에 걸쳐 입시 설명회를 개최하기로 해 학부모들을 열광시켰다. 그런데 이 고교는 진학 지도 교사가 아닌 사교육 입시 전문가를 초빙해 강사로 내세웠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서울 강남의 명문 고교조차 교사가 수업도 하고 입시 지도도 제대로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있다. 이 비유적 표현을 영어로 하면 좀 더 직설적이다. 'Rise from humble family.' 시험(과거)의 역사를 보면, 별볼일없는 서민 출신이 출세할 수 있는 디딤돌이기도 한 반면 '가진 자'에 대한 견제로 출발했다. 중국 수나라, 신라의 원성왕, 고려의 광종 모두 그 당시의 '가진 자' 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과거제도를 도입했다. 따라서 '가진 자'인 귀족들은 끊임없이 반발했고, 조선 후기에는 과거를 아예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대입 전형을 복잡하게 만든 명분은 그럴싸하다. 대학에는 학생 선발권을 주고, 수험생들은 입시 지옥에서 해방시켜 주겠다는 입에 발린 말로 서민들을 현혹시켰다. 누구를 위한 학생 선발권이고, 누구를 위한 입시 지옥 해방인지 진학 통계는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누구보다 서민을 위한다는 노무현정부 때 시작됐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서민을 위하는 정부와 서민을 이용하는 정부는 다르다. 이 관점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핵심을 간파한 서울대 미래교육기획위원회는 문'이과 구분 없이 선발하는 전형을 늘리고, 복잡한 전형을 단순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유감스럽게도 여기에는 '장기적'이라는 꼬리가 붙었다. 가정에 수험생이 있다면, 어깨를 한 번 도닥여 주기를 당부드린다. 그리고 공부는 내 자녀가 하지만, 그들이 보다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은 부모인 내 몫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대한민국은 국민주권 국가이다. 주권과 투표권은 가난하고 평범한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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