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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의 시와 함께]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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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나희덕(1966~ )

사랑에도 속도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솔잎혹파리가 숲을 휩쓰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한 순간인 듯 한 계절인 듯

마음이 병들고도 남는 게 있다면

먹힌 마음을 스스로 달고 서 있어야 할

길고 긴 시간일 것입니다

수시로 병들지 않는다 하던

靑靑의 숲마저

예민해진 잎살을 마디마디 세우고

스치이는 바람결에도

잿빛 그림자를 흔들어댈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단풍이 든 것만 같아

그 미친 빛마저 곱습니다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비,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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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와 뭉게구름 등을 타고 온다는 처서가 지났다.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절기를 공유한다. 같은 계절을 산다는 말이다. 이 땅의 계절은 누구나 같지만 사람마다 자신만이 살아가는 인생의 계절은 서로 달라서 고유하다.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가족끼리도 서로 계절이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서로 삶을 대하는 생각과 방식이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겨울이고 어느 한쪽이 여름이면 서로 반대되는 기운을 가진다. 어느 쪽은 이불을 덮으려 하고 어느 쪽은 이불을 걷으려 한다. 이해와 관용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인생의 계절도 자연의 계절과 같아서 따라잡을 수도 늑장 부릴 수도 없다. 타인에게서 병든 단풍을 느끼는 것도 서로 다른 계절을 읽었기 때문이다. 남의 계절을 인정하고 아름답게 느끼려는 마음에서 관용과 사랑을 읽게 된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세상은 어울릴 만한 곳이 된다. '미친' 긍정이 아름답다.

안상학<시인·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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