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잘못 걸리면 끝장…끝까지 탈탈 터는 '탐정 네트워크'

스마트 세상, 신상털기의 무차별 진화

무서운 세상이다. 까닥 잘못했다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출신학교는 물론 얼굴 사진과 신체 사이즈까지 새나갈 판이다. 친구들과 카톡과 페이스북 등에서 나눈 대화나 게시물도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전화번호 하나만 입력하면 신상 정보가 뜨는 프로그램까지 돌아다닌다.

신상 털기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잘못한 게 있다면 그나마 덜 억울하다. 재수가 없으면 생판 모르는 남이 저지른 일에 주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

◆털리면 죽는다

신상 털기가 극성이다.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선정적인 '19금' 사진부터 미성년자의 신원과 얼굴까지 무차별 확산되고 있다. 힘있는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이 다닌다는 학교가 특정되자 '채 총장의 혼외자'라며 남자아이의 사진이 떠돌았다. 이름은 물론 학교명까지 유포됐다. 그러나 이 사진은 서울의 한 초등학교 홈페이지에 게시된 홍보용 사진 속에 나온 어린아이의 사진을 따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달 초에는 '나 어때녀' 동영상이 인터넷상에 유포됐다. 이 영상에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옷을 모두 벗은 뒤 '나 어때'라고 묻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와 관련, 한 여고생은 '음란 동영상이 SNS에서 내 이름이 무단으로 도용돼 확산되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이 여고생은 "해당 동영상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SNS를 통해 나에 대한 신상 털기가 벌어지면서 허위사실이 유포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민망한 동영상도 빠르게 유포됐다. 이달 중순에는 경남 거제에서 차 안에서의 낯 뜨거운 장면이 찍힌 동영상이 카카오톡에 돌기도 했다. '거제 마티즈'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졌고 차량번호를 확인한 누리꾼들의 '신상 털기'로 이어졌다. 당사자는 물론 배우자의 직장과 이름까지 무차별적으로 유포됐다. 또 엉뚱한 사진이 돌아다녀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고인으로 만드는가 하면 입원한 연예인을 미국 도피자로 만들기도 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이용자의 81.9%가 '출처나 근거가 불분명한 내용의 게시물을 작성(업로드)한다'고 대답했다. 또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미확인 정보)를 게시한다'도 81.1%나 됐다.

◆탈탈 털어 드립니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신상을) 털 수가 있다. 신상 털기에 이용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게이션(앱)이 다수 유통되고 있어서다. 신상 털기의 방법이나 기술적 수준이 거의 해킹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불법행위에 활용될 수 있는 '몰카 앱' '도청 앱' '스토커 앱' 등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이런 앱을 악용하면 일반인들도 도청, 스토킹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일부 포털에서는 신원확인 등을 통해 차단하고 있지만 SNS 등을 통해서 마음만 먹으면 이들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기능도 최첨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일부 몰카 앱은 스텔스 기능까지 장착했다. 스마트폰 액정화면은 꺼진 상태에서 녹화할 수 있는 '블랙 스크린 모드'가 가능하다. 스마트폰의 앞, 뒤 카메라를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며 이 모드를 이용하면 주변인 모르게 녹취, 녹화를 할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촬영을 할 때, 증거를 수집할 때 등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고 대놓고 광고하는 앱도 있다. 지하철과 같이 사람이 붐비는 곳이나 계단 밑에서 '도촬'(몰래 촬영)할 수도 있고 도청에 이용될 수도 있다. '신상 털기 앱'은 특정인의 아이디(ID)를 입력하면 관련된 게시물을 찾을 수 있다. 수신자의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주며, 상대방이 받기 전까지 반복적으로 재다이얼을 하는 '스토커 앱'도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기관 등을 사칭한 악성앱까지 등장했다.

'스마트, PC 등에서 유출된 대한민국 3700만 국민의 금융신상정보 이제 클릭 하나로 설치하셔서 방침하세요. ㈜한국인테넷진흥원'이라는 문자가 휴대폰으로 온다. 문자메시지에 포함된 인터넷 주소를 누르면 녹취정보, 주소록, 위치정보, 금융 정보를 해커 서버로 전송하는 악성앱이 설치된다. 이름을 사칭당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직접 경고에 나섰다. 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문자메시지 내 인터넷 주소를 누르지 말고 바로 삭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앱디자이너인 조세영 씨는 "앱은 잘 활용하면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지만 불법행위에 악용될 수도 있다. 불법성이 강한 앱이 자체적으로 걸러질 수 있도록 이용자들이 앱장터 사업자에게 신고하는 등 스스로 자정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명예훼손, 법적 체벌 강화

신상 털기가 본격화된 것은 2005년 6월 '개똥녀' 사건 때부터다.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리는 사연이 알려진 후 분노한 네티즌들이 이 여성의 학교와 이름, 얼굴 사진 등을 '탈탈' 털었다. 이후 지하철 '막말녀', 1호선 '막말남' 등의 신상이 줄줄이 털렸다.

당사자는 해명 한마디 못하고 만신창이가 돼야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도 한번 붙은 오명을 떨어내지는 못했다. 심지어 이혼하는 등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도 있었다. '너무하다'는 지적과 우려는 소리 없이 다수의 침묵 속에 묻혀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신상을 털린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법에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상 털기에 동참한 사람도 '개인정보보보호법'에 따라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한 자와 제공받은 자는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또한 형법 제307조에 따라 상대방의 동의 없이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유출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해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강부환 변호사는 "익명성 뒤에 숨어 있다 보니 진실과 달라도 자신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생각에 죄의식 없는 무차별 신상 털기가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유포한 사람이라도 처벌받을 수 있다"고 했다.

경찰은 적극적이다. 최준영 대구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은 "피해 당사자의 고소'고발 없이도 인터넷에서의 부적절한 정보 유출에 대해서는 수사에 나선다. 사안에 따라 명예훼손, 폭력 등의 혐의가 적용될 수 있고 법적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