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날이 가장 행복한 날이죠."
일요일 문을 여는 학교, 쉬는 날인데도 즐거운 발걸음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있어 화제다. 중학교 학력을 갖추지 못한 성인들을 위해 대구시교육청이 전국에서 처음 문을 연 대구고등학교 부설 대구방송통신중학교와 그 학생들이 사연의 주인공이다. 3월 개교한 뒤 매월 첫째, 셋째 주 일요일에만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등교 횟수는 겨우 10차례를 넘겼다. 하지만 그동안 선생님과 학생 사이, 학생들끼리 쌓인 정(情)과 이야기는 시간이라는 걸림돌을 훌쩍 뛰어넘고도 남는다.
35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이 학교 1학년 2반의 평균 연령은 65세. 담임인 박신영 교사가 이제 마흔 살이니 어르신 학생에겐 딸 같은 나이의 담임 선생님을 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박 교사가 어렵다. '스승'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박 교사는 자신을 어려워하는 어르신 학생들을 보면 오히려 미안하다. "어르신들이 제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도 꾹 참고 가장 젊은 반장님에게 말씀하셨나 봐요. 반장님도 60세이신데….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절반 정도 어르신만 답장을 해 '나머지 분들은 많이 바쁘셨나 봐요?'라고 농담을 건넸더니 한 분이 '선생님 바쁘신데 답장해도 됩니까?'라고 하시더군요. 다들 제게 전화를 할 때면 귀찮게 만들어 미안하다고 하세요."
여느 학교와는 구성원이 다르다 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에피소드도 많다. 교가 부르기 시험 때 교가를 민요처럼 낭랑하게(?) 부르고는 박 교사에게 못 불러 미안하다는 할머니 학생이 있는가 하면 중간고사 때 돋보기를 써도 잘 보이지 않는 OMR 카드에다 답을 기재하느라 진땀을 빼는 어르신이 속출했다. 당시 잘못 적어 버려진 OMR 카드가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지난 5월 체육대회 때는 어르신들끼리 좀 더 가까워지라고 중학생들에겐 금지된 막걸리를 한 잔씩 나누기도 했다.
백남도(63) 학생은 늦게나마 배움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못다 이룬 배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한 달에 두 번만 등교하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이른 아침 아내가 챙겨준 도시락을 받아 들고 학교로 오는 길은 너무 즐거워요. 방송통신중 입학은 늦은 나이에 배달된 소중한 선물입니다."
이경연(65'여) 학생은 우등생이다. 지난 5월 중간고사 때 국어, 영어, 수학, 과학, 기술'가정 등 5과목 시험을 치러 3과목에서 만점을 받았다. 하지만 음악 수행평가만큼은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교가 부르기 시험을 봤는데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목이 바짝바짝 마르고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어떻게 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간고사 성적을 받고 즐거웠던 것과 함께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을 거예요."
정선교(61) 학생은 경기도 성남에서 통학하는 열성파다. "처음 입학 때는 부끄러웠는데 딸 같은 젊은 담임 선생님께서 늘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씀을 해주셔서 자신감이 붙었어요. 대구까지 통학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등교하는 날을 기다리는 게 제겐 가장 큰 행복입니다."
나이 든 학생들과 젊은 선생님이 세대 차를 넘어 함께 걸어가는 곳. 박 교사가 느끼는 대구방송통신중의 모습이 그렇다. 박 교사는 어르신 학생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저 덕분에 재미있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신다고 하지만 오히려 제가 그분들 덕분에 교사 생활을 잘하고 있어요. 어르신들에게서 과분한 사랑과 대접을 받고 있으니까요. 전 부끄러우면서도 행복한 교사입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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