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괴한 들락…잠 못드는 여대생 기숙사

부산 이어 대구서도 발생 충격…새벽에 2층 방충망 뜯고 침입 허술한 보안

대구 한 대학교 여자 기숙사 건물 외벽에 설치돼 있는 배관. 덮개나 윤활제 같은 침입 방지 시설이 없어 범죄에 취약하다. 2~4층에는 방범창이 없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 한 대학교 여자 기숙사 건물 외벽에 설치돼 있는 배관. 덮개나 윤활제 같은 침입 방지 시설이 없어 범죄에 취약하다. 2~4층에는 방범창이 없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학교 여학생 기숙사가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올 8월 부산의 한 대학교 여학생 기숙사에 20대 남성이 침입해 성폭행한 사건이 벌어진 데 이어 10일 대구의 한 대학교 여학생 기숙사에 괴한이 침입했다가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학생들은 허술한 기숙사 방범망에 불안해하고 있다.

대구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괴한이 기숙사에 침입한 건 10일 오전 4시 30분. 270명의 여학생이 생활하는 기숙사에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졌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방충망을 뜯고 방 안으로 들어오려 했던 것. 2층 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A(20'여) 씨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떴을 때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깜짝 놀란 A씨는 소리를 질렀다. 괴한은 "나갈 테니 소리 지르지 마라"고 말한 뒤 방문을 열고 그대로 줄행랑쳤다. 경찰은 괴한이 1층 화장실 창문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간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이곳 기숙사 2층에서 생활하는 한 여대생(22)은 "지금도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아직 기숙사에 숨어 있을 지도 몰라 불안하고 무섭다"며 "여자들만 사는 기숙사 방범망이 이렇게 허술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대생(20)은 "부산에서 발생한 여대생 기숙사 성폭행 사건이 우리 기숙사에서도 벌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며 "방마다 디지털 도어록을 설치하는 등 허술한 보호망을 보완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올 8월 부산에서는 20대 남성이 대학교 여학생 기숙사에 들어와 잠을 자고 있던 여대생(19)을 성폭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배경에는 부실한 기숙사 치안시스템이 있었다. 당시 기숙사는 기숙사 입사 기간이라 출입통제시스템이 꺼져 있었고, 방문은 잠겨 있지 않은 상태였다. 뒷문도 열려 있어 범인이 쉽게 도주할 수 있었다. 지난 2007년에는 대구의 또 다른 대학교 여학생 기숙사에 술에 취한 남학생이 침입해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뒤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10일 괴한이 침입한 대구 여대생 기숙사 역시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여학생 기숙사를 지켜주는 보호망은 중앙현관문에 설치된 카드키 인식기가 전부였다. 카드만 있으면 누구라도 자유롭게 기숙사를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있었다. 1층에 관리실이 있지만 모든 관리원이 학생의 얼굴을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외부 보호망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어른 키 높이의 1층 창문만이 철조망과 철제 울타리로 외부 침입을 차단하고 있었다. 2층부터 4층까지는 내부 창문과 방충망이 전부였다. 내부 창문을 연 채 방충망만 설치된 방은 방 안이 훤히 보였다.

외벽에 배관이 달린 건물 뒤편은 방범에 더욱 취약했다. 어른 키 높이의 담장만이 학교와 외부 건물들을 구분하고 있었다. 배관을 타고 4m 정도만 올라가면 2층이었다. 창문 바로 아래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는 발 받침대 역할을 하는 듯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건물 뒤편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는 단 1대였다. 이마저도 건물 오른쪽 끄트머리 2층 높이에 아래를 향하도록 되어 있어서 뒤편을 모두 비추기란 어려웠다. 괴한이 기숙사 2층 창문으로 올라가는 장면도 CCTV에 찍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경찰은 괴한이 기숙사 외벽의 배관을 타고 올라갔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 정확한 이동 통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곳 대학교 관계자는 "1층뿐만 아니라 모든 층에 방범창을 설치하고 보안시스템을 좀 더 꼼꼼하게 짜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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