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워크오프

영어에서 '워크오프'(walk-off)는 '경기 막판에 결정적인'이라는 뜻의 형용사다. 쉬운 말로 '끝내기'다. 야구에서 동점 상황이거나 뒤지고 있을 때 결정적인 안타나 홈런으로 경기를 매조지할 때 쓰는 용어다.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워크오프 블래스트(Blast)와 같은 말이 등장하면 누구나 홈팀의 극적인 승리를 단박에 알아차린다.

워크오프의 의미는 원래 패전 투수에서 비롯됐다. 실점한 투수가 마운드를 걸어나와 필드를 떠난다는 데서 유래했다. 그러다 1990년대 말부터 극적인 승부에 초점을 맞춰 널리 쓰고 있다. 특히 3점을 지고 있다가 만루홈런으로 승부를 뒤집는 경우는 140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27번에 불과할 정도로 워크오프 홈런은 흔치 않다. 무엇보다 승부가 날 때까지 계속하는 메이저리그의 경우 끝내기는 관중에게 축복이나 다름없다.

워크오프가 야구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정치와 경제, 외교정책 등 모든 분야에서 끝을 분명히 맺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1961년 미국의 쿠바 피그만 침공은 논란의 끝내기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준 사례다. 쿠바 공산화에 불안감을 느낀 케네디 정부와 CIA는 쿠바 난민을 반군으로 위장시켜 피그만을 공습했다가 실패해 곤경에 처했다. 명분도 없이 엉성한 공작을 감행해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 내부에서도 조롱거리가 됐다. 카스트로는 케네디에게 "당신 덕분에 우리의 혁명이 굳건해져서 고맙다"는 전문까지 보냈다.

그러나 케네디는 사건을 수습했다. TV에 출연해 피그만 침공이 자기 잘못임을 인정했다. "제 실책입니다. 피그만을 침공했습니다. 질문 있습니까?" 그 한마디에 들끓었던 언론도 잠잠해졌다. 실책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곤경에서 벗어난 것이다.

정상회담 대화록 공방이 1년 가까이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다. 더 이상 이 문제로 정쟁하지 말자고 여야 모두 말은 하지만 여태껏 수습을 않고 있다. 최근 사초(史草) 증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국민들은 넌더리를 내고 있다. 실체적 진실은 검찰과 법원에 맡기고 여야 정치권은 이제 사초 정국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다.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도 대화록만 붙들고 공방을 벌이는 것은 국민에 대한 결례다. 더 늦기 전에 '워크오프' 선언이 나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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