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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만어] 병역기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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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임하면 천전리 속칭 내앞마을에서 의성 김씨 권문세가의 장자로 태어난 백하(白下) 김대락은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나라가 망하자 칠십을 바라보는 노유(老儒)의 몸으로 향중의 유림들과 함께 만주 집단 망명을 단행했다.

겨울 칼바람 속 압록강을 향한 망명길엔 문중 인사와 청장년은 물론 만삭의 임부였던 손부와 손녀까지 뒤따랐다. 글이나 읽으며 편히 지내도 되었을 여생을 서간도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바친 백하는 지금도 만주땅 어디엔가 쓸쓸히 묻혀 있다.

그 이듬해인 1911년 새해 벽두, 안동의 명문가 고성 이씨 종손인 석주(石洲) 이상룡도 고택 임청각을 뒤로한 채 만주 망명길에 올랐다. 어린아이와 부녀자까지 섞인 가솔들을 이끌고 살을 에는 북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압록강을 건넜다.

쓰러져 가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것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한 형극(荊棘)의 길을 자청한 것이다. 그렇게 만주땅에 묻혔던 석주의 유해는 광복이 되고도 45년이나 지나서야 고국으로 돌아왔다.

안동 권씨 부정공파 12대 주손인 추산 권기일도 1912년 가산을 정리해 만주로 떠났다. 이상룡 김동삼 등이 주도하는 독립운동에 합류했던 그는 1920년 신흥무관학교 인근 수수밭에서 일본군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독립운동에 투신한 장손이 순국하자 그토록 위풍당당하던 명문거족의 자취도 이슬처럼 스러졌다. 광복이 되어서도 추산의 아들은 안동으로 돌아와 행상으로 연명을 해야 했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안동 명문가의 이야기들이다.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와 정부 산하기관 간부의 상당수 아들들이 우리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 의무를 면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적 포기의 이유도 걸작이다. '자녀 의사 존중' '학비와 교육 문제' 등등이다.

하긴 부유층 일각에서는 원정 출산도 유행하는 나라가 아닌가. 지켜야 할 것은 애써 외면하면서 누릴 것에만 혈안이 된 이들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보일 행보는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 인사의 도덕적 의무)가 불문율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영국에서는 명문가 자제들이 다니던 이튼칼리지 졸업생 2천여 명이 전사했고, 6'25전쟁 때는 아이젠하워 장군을 비롯한 미군 장성의 아들 140여 명이 참전해 30여 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로마가 제국으로 융성했고, 영국과 미국이 여전히 선진국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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