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령(가명'54) 씨는 얼마 전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3년 전 연락이 끊어진 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구청에 편지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아빠는 잘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꼭 연락해다오'라고 썼어요. 3년 전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볼 때 아들은 하염없이 울고 있었거든요. 네 잘못 아니고, 아빠는 잘 버티고 있으니 살아있는지만이라도 알려달라고 썼지요."
하지만 편지는 '수취인불명'으로 되돌아왔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삶'의 마지막 의미가 됐던 아들이 점점 멀어져가는 느낌에 이 씨는 하루하루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도망쳐도 벗어날 수 없던 가난
이 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를 그만둬야만 했다. 가난한 집안에 동생들을 돌봐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동생들을 등에 업고 논두렁을 돌아다니며 젖 동냥을 다녔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너무 싫었던 이 씨는 결국 열다섯 살에 집에 있던 돈 3천원을 훔쳐 부산으로 도망을 갔다. 이 씨는 부산에서 날품팔이를 하면서 야학을 통해 중학교 검정고시까지 마칠 수 있었다. 더 공부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농사일을 돕던 이 씨는 끝내 가난을 참지 못하고 부산으로 재차 도망가 고무공장에서 돈을 벌었다. 버는 족족 집으로 생활비와 동생들 학비를 부쳤다. 열아홉 살 되던 해에는 "광산에 가면 돈을 많이 번다"는 말에 문경 광산에서 일을 시작했다.
"광부 일도 돈이 많이 안 벌려서 21살 때 원양어선을 탔어요. 그래도 그때는 돈이 좀 모이더군요. 동생들도 자기들 원하는 만큼 공부하도록 돈을 댔고요. 그때 모은 돈으로 작은 사업을 하나 시작했습니다. 부지런히 하니 먹고살만큼은 벌어지더군요."
이 씨는 23살이 되자 운동복 보따리장사를 시작했다. 장사가 적성에 맞았던지 보따리장사로 시작한 장사는 2002년쯤에는 부산 서면의 한 쇼핑몰에 매장을 2개나 차릴 정도로 번창했다. 이 씨는 이제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 정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한순간에 무너진 삶
이 씨의 그런 믿음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쇼핑몰 운영회사가 부도를 내면서 매장과 투자한 돈 모두를 잃고 말았다. 게다가 주식투자도 실패해 이 씨는 모두 3억원의 빚을 졌다.
"암담했죠. 빚은 빚대로 못 갚고, 한창 꿈을 키우던 아들도 결국 공부를 그만둬야 했지요. 아내와도 헤어졌고…. 정말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이 씨는 작은 승합차 하나를 동생들의 돈을 빌려 산 뒤 매장에서 팔다 남은 물건들을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길거리에서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잘 곳도 없어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기 일쑤였다. 이 씨의 건강상태는 나빠졌지만 이를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배에 복수가 차기 시작했다. 병원에 갈 시간도 없이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 바빴던 이 씨는 대구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갔고, 당뇨병에 간경화가 왔다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비를 대려고 차를 팔아버린 이 씨는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돼 버렸다.
"이 때부터 대구에서 막노동, 날품팔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요. 잘 곳이 없으니 하루 일당 4만원을 받으면 그 돈으로 찜질방 가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돈을 모으다 보니 월세 17만원짜리 쪽방 하나 얻을 만큼 돈이 모였지요."
힘겨운 삶에 이 씨의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급기야 2011년 이 씨는 간암판정을 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모아둔 돈이 없었기에 구청의 긴급의료지원금을 통해 겨우 수술비를 해결했다. 이 씨는 이때 아들을 마지막으로 만난 뒤 아들과의 연락이 끊어졌다.
◆마지막으로 희망을 구하다
이 씨는 병원 가는 것이 두렵다. 올해 초 병원에서 간암이 재발했고,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이 씨에게는 수술비는커녕 병원에 낼 진료비도 없었다. 특히 선택진료처럼 비급여치료가 많은 이 씨에게 병원 진료는 한 달 생활비를 털어 넣어야 할 정도로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제가 2007년부터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지정돼서 보조금 46만7천원을 받습니다. 여기서 방세 17만원, 각종 공과금 21만원, 통신비 5만원, 구청에서 공제하는 쌀값 약 4만원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습니다. 병원 한 번 가면 진료비가 적어도 4만원이 나오는데, 어떻게 병원에 가겠습니까. 그래서 병원 가는 발걸음을 끊다시피 했습니다."
이 씨에게는 돈을 빌려 줄 사람도 없다. 동생들에게 너무 자주 손을 벌리다 보니 동생들에게 진 빚만 합쳐서 3천만원이 됐다. 결국 이 씨는 동생들과 연락이 끊어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아무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 씨는 삶에 대한 희망을 차츰차츰 잃어가고 있다. 재발한 간암은 수술만 받으면 적어도 5년은 더 살 수 있다고 병원에서 말했지만 이를 해결할 돈이 없고,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백내장 때문에 눈도 침침하다. 매일 방 안에 혼자 누워 있거나 간암 관련 책을 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인 이 씨는 극심한 외로움으로 우울증과 불면증도 앓고 있다.
이 씨는 생의 마지막이 오기 전 꼭 아들을 보고 싶다고 했다. 이 씨에게 아들은 유일한 혈육이기 때문이다. 이 씨는 올해 서른한 살이 된 아들과 보냈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하루하루를 버틴다.
"차라리 목숨을 끊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그러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아들 때문입니다. 만나면 서로 힘들어할 것 같아 수소문하는 것조차 두려웠었는데 지금은 아들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너한테 제대로 해 준 것도 없이 힘들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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