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중국 베이징 전통음식, 북경오리구이 '카오야'

겉은 바삭 속은 쫄깃 '대륙의 진미'

우리에게 '북경오리구이'로 더 잘 알려진 '베이징 카오야'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전통음식이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반기문 UN 사무총장, 그리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다녀갔다는 베이징 카오야 전문 음식점 '취안지더'(全聚德)는 중국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국영 외식업체다. 서구 영미권에도 '페킹 덕'(Peking Duck)이란 이름으로 명성이 자자한 북경오리구이는 세계화를 어떻게 이뤄 낸 것일까. 북경오리구이를 찬찬히 살펴보면 우리의 전통 향토음식의 산업화와 한식 세계화의 길이 보인다.

◆황제가 즐겨 먹은 베이징 카오야

카오야는 원래 600여 년 전인 1416년 왕서방이라는 사람이 난징(南京)에서 '편의방'이라는 이름으로 오리구이 식당을 차리면서 난징의 유명한 향토음식으로 성장했다. 1386년 주원장이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명나라를 세운 뒤 베이징(北京)으로 천도하면서 난징 카오야도 같이 옮겨 황제가 즐겨 먹는 궁중요리 베이징 카오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주원장은 이 오리구이의 맛에 반해 매일 먹다시피 했으며, 미식가인 건륭제도 '1761년 봄 13일 동안 여덟 번이나 카오야를 먹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카오'는 굽다는 뜻이고 '야'는 오리다. 카오야는 '구운 오리'다. 취안지더 북경오리구이엔 '다리가 짧고 체구가 크며 고기에 단맛이 난다'는 베이징산 오리만을 재료로 쓰는데 생후 2개월이 되면 운동을 시키지 않고 가둬 키운다. 살을 찌우기 위해 하루에 서너 차례씩 강제로 모이를 먹이고, 지방 함유랑이 최고일 때 잡는다. 그래야 부드러운 육질을 얻을 수 있어 빛깔과 맛이 제대로 된 오리구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북경오리구이의 맛은 바삭하게 구운 껍질에 있기 때문에 오리의 살과 껍질 사이에 대롱을 꽂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어 껍질과 지방이 분리되도록 한다. 그다음 껍질에 엿물을 여러 번 발라 갈고리에 걸어 3, 4일간 그늘에 말린다. 이렇게 하면 껍질이 풍선처럼 팽팽해져 통통해 보이고 구워도 쪼그라들지 않는다고 한다. 말린 오리를 갈고리에 매달아 대추나무와 배나무 등 과일나무 장작불로 서너 시간 동안 천천히 구우면 껍질이 대추처럼 붉어져 북경오리구이 특유의 빛깔과 오묘한 맛을 내게 된다.

베이징에서 가장 번화가인 왕푸징(王府井) 거리 샤이퍼년(將軍) 골목에 자리한 취안지더 왕푸징점은 5층 건물에 한 층당 넓이가 900㎡가 넘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도로변에 접한 건물 길이도 70m나 된다. 취안지더 본점인 화평문점보다 손님이 많다. 워낙 매출액이 커 중국건설은행이 아예 가게 옆에 지점을 열었을 정도다.

취안지더 왕푸징점은 포장 판매도 한다. 카오야를 포장해 가는 이들을 위해 판매부스와 배달용 냉동탑차도 운영한다. 건물 앞에선 판매를 하고, 뒤쪽에선 오리를 구워 내는 전형적인 전점후창(前店後倉)식 운영방식이다. 가격은 카오야 1마리와 '터이에벼'(연꽃떡)라는 밀전병 1봉지, 6가지의 소스세트를 합해 227위안이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냉동포장이면 137위안. 선물용으로 호화롭게 포장하면 228위안을 받는다. 포도주와 바오주도 생산한다. 취안지더 포도주 1박스는 460위안. 9병이 든 바오주 1박스는 148위안이다. 추석에 먹는 '쩡저'라는 댓잎에 싼 월병과 '탕뢰'라는 찹쌀 새알국수도 자매상품이다. 취안지더는 북경오리구이 전문 음식점만이 아니라 북경오리구이를 대표 상품으로 앞세운 중국 전통음식 전문 종합식품 기업인 셈이다.

◆맛과 격이 다른 취안지더 북경오리구이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문을 여는 왕푸징점은 동시에 1천5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30명이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큰 상을 놓은 방도 따로 있다. 음식은 세트요리, 코스요리 방식으로 제공된다.

첫 번째 요리는 오이양채다. 짜지도 시지도 않게 오이를 절였다. 오이피클과는 맛이 다르다. 다음이 오리발바닥 요리. 물갈퀴를 삶아 건진 뒤 물기를 빼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코를 톡 쏘는 초겨자에 찍으니 새콤한 맛이 식욕을 부른다. "오리발바닥은 콜라겐이 많아 피부에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여성 손님들이 두 접시씩 먹기도 합니다." 종업원 취홍샤(25'여) 씨가 웃으며 설명했다. 삶은 물갈퀴는 기름기가 없어 의외로 담백하다. 호두 모양의 월병과 완두콩으로 만든 양갱도 따로 나온다. 야채를 곁들인 마(산약)볶음도 별미. '꿍빠오따샤'라는 새우탕수육은 건고추와 대파를 넣고 함께 볶았다.

북경오리구이는 생파나 오이채를 곁들인 간장과 다진마늘을 곁들여 먹는다. 끈적끈적한 간장은 땅콩으로 만든 티엔멘짱(단면장)이다. 영업경리 류우하오(33) 씨가 "오리구이를 먹기 전에 레드와인을 조금 마셔두면 카오야의 맛을 더욱 맛있게 느낄 수 있다"며 입을 깔끔하게 헹궈 둘 것을 권했다.

40여 분이 지나서야 주방장과 함께 오리구이가 들어왔다. 능숙하게 오리구이 살을 발라 내는 주방장 량페이(25)의 손놀림이 현란하다. 올해로 경력 7년째인 그는 껍질과 살을 붙여서 얇게 발라낸다. 고기 조각 하나하나의 두께가 일정하다. 그는 "오리고기는 따뜻할 때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며 껍질을 썰어 담아 미리 건넸다. 오리고기는 티엔멘짱 소스에 찍은 다음 터이에벼 연꽃떡에 싸서 먹는다. 만두피처럼 밀가루를 얇게 구운 밀전병이다. 붉고 바삭하게 굽힌 껍질은 냄새가 고소하고 식감은 아이스크림처럼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금세 입안이 황홀해진다.

고기는 팍팍하지 않고 쫄깃하다. 채를 썬 생파를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곁들여 낸 깨빵에 끼워 먹어도 별미. 약간의 향채를 쓴 오징어 내장탕은 식감이 아주 부드럽고 미끈해 전형적인 중국 음식의 향미를 느낄 수 있다. 하얼빈이 고향인 조선족 동포 방웅길(55) 씨는 "하얼빈에서도 북경오리구이를 하지만 베이징 취안지더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이 다르고 격도 다르다"고 맛에 탄복했다.

◆중국 최고 음식은 세계의 '일류미식'

"오랜 세월에 걸쳐 발달한 중국 음식은 모두가 수백 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청나라 때인 1864년에 창업된 취안지더 카오야도 중국 음식 문화의 정서가 면면히 살아 있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또 먹고 싶어지는 취안지더 카오야는 모두 여섯 가지의 오묘한 맛이 납니다. 쓰촨성과 산둥성의 전통적 중국요리 기법을 다 동원해 정성껏 오리구이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청나라 때의 전통을 계승해 더욱 발전시켜 오면서 이제는 지구촌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국제적 명품음식이 되었습니다."

올해 열아홉 살인 여종업원 차오첸첸 씨가 식탁 앞에서 연도까지 술술 읊으며 취안지더의 내력을 설명했다. 취안지더의 체인점은 베이징에 13개. 상하이에 1곳이 개설돼 있다. 그러나 한번 맛을 본 고객들은 왕푸징점만 찾는다고 한다. 이곳의 직원 수만 500여 명에 이른다. 화장실도 5성급 호텔 이상 수준이다. 외국 정상들의 연회장으로 자주 사용되기 때문에 그렇단다. 왕푸징 점장 싱영(刑映'56) 씨는 "1910년대 청조 말엽에는 궁중음식에서 카오야 없이는 밥상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다"며 "당시 공주가 먹던 카오야 조리 기법을 전수받아 그 방식 그대로 오리를 굽고 있다"고 자랑했다.

3명이 북경오리구이 두 마리를 시켰는데 가격이 1천200위안. 생오리 한 마리 가격이 30위안인 점을 감안하면 카오야의 부가가치는 570위안. 생오리 값의 19배에 이른다. 장사 잘하기로 유명한 중국 사람에게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북경오리구이가 낳은 자매상품은 본 상품의 매출을 능가한다. 차오첸첸 씨는 손님들이 감탄하니 더욱 신이 나는 모양이다. 또다시 목청을 양껏 돋워 '달달 외우기' 시작했다. "1959년에 개설된 왕푸징점의 경쟁력은 재료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지요. 재료는 북경산 오리를 엄선합니다. 까다로운 선별 과정과 엄격한 조리과정은 저희 취안지더만의 자랑이지요. 오리고기에는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건강에 이롭고 다른 고기보다 소화도 잘 됩니다. 언제 어느 때 먹어도 괜찮은 사계절 음식이지요. 중국의 제일음식은 이제 세계 일류미식이 됩니다."

중국 베이징 왕푸징에서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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