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세계화의 성패는 향토음식 산업화의 성공 여부에 달렸다. 이는 향토음식이 일반 대중음식과 얼마나 차별화를 이뤄내느냐가 관건이다. 그 지역의 전통 향토문화를 얼마나 음식에 접목시키는가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전국화에 성공한 유명 향토음식을 보면 그대로 나타난다. 지구촌 세계인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는 각 나라의 명품 전통음식도 그 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따라서 향토음식 산업화와 한식 세계화의 소재 발굴을 위해서는 각 지역 특성을 살려 내는 향토문화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담은 음식과 특산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
전통문화의 가치가 음식에 직접 반영돼 전통음식의 산업화와 세계화에 밑받침이 되고 있는 사례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전통음식 항이를 들 수 있다. 마오리족은 부족의 영역을 침범한 외부인들을 대하는 마오리족의 과격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전통 문화행사로 만들고, 모닥불에 뜨겁게 달군 돌멩이를 이용해 음식을 익히는 '어쓰오븐'(Earth oven)이라는 전통 조리방식을 그대로 연출해 전통음식점을 운영한다.
원시적인 방식의 음식이지만 전통문화와 접목해 지구촌 관광객들을 열광시킨다. 특히 로토루아 호수에서 전해오는 마오리족 청춘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는 스토리텔링 마케팅 효과를 낸다.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로토루아 호수변의 마오리족인 타마키 부족은 이 같은 방식으로 전통음식 항이를 1인분에 10만원에 팔며 매일 100여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지구촌 곳곳에서 발견된다. 북경오리구이로 알려진 중국 베이징 카오야도 마찬가지다. 값싸고 흔한 집오리 한 마리에 중국 황제의 역사를 담은 전통문화를 접목시켜 고가의 전통음식으로 산업화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구워 낸 오리구이를 손님 식탁으로 가져 와 화려한 칼솜씨로 살을 발려 내는 쇼로 부가가치를 극대화한다.
일본 후쿠오카 특산물인 멘타이코(明太子) 전문 음식점에서 중년 여성들이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고 손님들의 시중을 드는 것도 문화와 음식의 접목을 노린 것이다. 그 결과 식당 앞에는 매일 손님들이 줄을 선다. 향토음식에 나타나는 전통문화의 위력은 태평양의 섬인 하와이와 발리에서도 나타난다. 하와이 원주민 전통음식인 카울라 피그와 라우라우, 그리고 발리 원주민들이 먹던 그라푸 생선구이는 그 지역의 오랜 향토문화를 담은 전통음식이기에 세계 미식가들이 줄이어 찾아가고 있다.
◆전통문화+향토음식=산업화 성공
"우리 전통음식 상차림은 먹는 사람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만족을 주는 것 같아요."
안동지역의 향토음식과 반가음식을 현대화된 레시피로 개발한 향토음식연구가 정진순(54'양반밥상 주방장) 씨는 교자상과 놋그릇을 이용해 7첩 반상과 9첩 반상을 차리는 종갓집 상차림 연구에 열심이다. "상차림도 예술"이라고 하는 정 씨는 "맛은 기본이고 그릇의 배열과 음식 색상의 대비와 조화로움이 상을 받은 손님들을 편안하게 한다"고 전통 상차림의 우수성을 자랑했다. 안동 지역은 사대부의 반가음식과 서민음식으로 크게 나뉘는데 약선음식과 궁중음식, 사찰음식, 종가음식에 이르기까지 전통 향토음식을 소재로 한 음식 산업화 움직임이 다양하게 일고 있다.
국내 전통음식 산업화의 성공 사례로는 먼저 전주비빔밥을 꼽을 수 있다. 버섯과 야채를 주재료로 한 덮밥 형태지만 놋그릇이라는 전통식기를 사용하면서 일본의 돈부리(덮밥)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옥이라는 기본 전통문화 콘텐츠에 놋대접은 전주의 향토문화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 충분한 것이다.
향토문화가 가득한 음식으로는 강원도 정선 곤드레나물밥도 들 수 있다. 허기진 화전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곤드레나물밥은 봄철 춘궁기를 넘어야 했던 그때 그 밥이다. 이는 강원도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향수와 정취가 서린 음식이기에 관광객들을 정선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흑산도 홍어도 전라도 섬지방 특유의 향토문화가 스며 있는 음식이다. 코를 톡 쏘는 삭힌 홍어에 대해 외국인이 싫어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금물. 이 홍어의 별난 맛이 한식에 대한 별난 스토리를 낳는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외에도 휴전선이 낳은 군사도시문화의 산물인 경기도 포천의 이동갈비와 귀양 온 수라간 상궁이 궁중요리를 전했다는 전남 강진군 45첩 반상의 남도한정식, 경남 하동의 섬진강 재첩국과 민요 오동추야의 고향인 마산 오동동의 아구탕도 그 지방 고유의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기에 전국 미식가들이 손꼽는 향토음식이 됐다.
◆경쟁력 높은 대구경북 향토음식
독특한 향토문화와 고유한 전통이 살아 있는 대구경북의 향토음식으로는 영양 음식디미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군자로 일컫는 장계향(1598~1680)이 쓴 조리서를 근거로 한 전통 반가(班家)음식이다. 음식디미방 전통음식은 문향으로 쟁쟁한 문인들을 배출한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에 자리한 데다 옛 조리서에 수록된 다양한 스토리텔링 소재를 안고 있다.
안동의 건진 국수도 내륙 깊숙이 자리한 지리적 특성과 향토문화를 오롯이 담아 낸 음식으로 산업화의 가치가 높다.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안동에는 귀한 멸치 대신에 강에서 잡은 은어를 말렸다가 국물을 내 독특한 맛을 연출한다.
안동간고등어도 마찬가지다. 바닷가는 싱싱한 고등어가 흔하지만 교통이 불편한 안동은 소금간과 고등어가 특산품이 된 것이다. 상어고기를 염장해 특산화한 영천돔배기와 꽁치로 만든 구룡포 과메기도 지리적 특성에 따라 나타난 향토문화권 특산물이다.
영주 순흥묵밥에 얽힌 참혹한 역사도 서민 음식이었던 메밀묵밥을 스타음식으로 등극시켰다. 단종 복위를 꾀하던 거사가 실패하면서 폐허가 된 순흥면. 몰락한 마을에 곡식이라곤 메밀밖에 없었으니 마을 사람들에겐 메밀묵이 주식이 됐다. 메밀묵과 역사, 향토문화를 사발에 담은 순흥면민들의 애환도 향토음식 산업화에는 경쟁력으로 나타난다.
대구경북에서 경주는 전통음식 산업화에 가장 앞서 있다. 박미숙 한국전통음식교육원장의 궁중음식 전문점인 수리뫼와 경주 최 부잣집 전통음식을 소재로 한식 메뉴를 개발한 요석궁, 한식전문가 차은정 교수가 운영하는 신라 이사금 밥상을 소재로 한 라선재가 대표적인 선두주자다. 한귀정 농촌진흥청 한식세계화 연구관은 "민물고기 매운탕처럼 한국 전통의 맛인 매운맛도 한식을 지구촌에 특화해 낼 수 있는 좋은 소재"라며 "맵고 신맛으로 세계인의 혀에 각인된 태국의 전통음식 톰얌꿍의 성공사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안동'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 강병두 plmnb12@hanmail.net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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